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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제9회 부산평화영화제/★관객리뷰

<하동채복 : 두 사람의 노래> 씨네토크

<하동채복 : 두 사람의 노래> 씨네토크

모더레이터 : 윤내경 (부산어린이어깨동무 운영위원)

 

 

작성자

관객심사단 : 최세영

 

 

 

 

<1987, 2017>

 평화는 평화롭게 오지 않았다. 특히, 그 해는 오지 않는 평화에 유독 시렸던 해였다. 6, 서울에서 시작된 민주화 운동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고 7, 울산 현대엔진 사업장에서 시작된 노도조합 운동은 전국적 노동운동으로 퍼졌다. 그 해, 1987년은 유독 시렸고 사람들은 더욱 강했다.

 그 해, 하동과 채복은 노동운동 현장에 있었다. 하동은 노동운동에 있어 노동자였던 작은 형의 영향이 컸다. 늘 깨끗한 옷을 입고 출근하던 형은 일할 때 머리부터 발 끝까지 새카매지도록 일을 했다. 채복은 대학을 졸업하고 공장 노동자로 일을 했는데 자기 보다 어린 노동자들이 많았다. 그 어린 노동자들 속에는 지방에서 올라와 적은 월급을 집으로 보내줘야 하는 소녀 가장들도 꽤 있었다. 채복은 그 친구들의 언니가 되고 싶었다. 나이가 많아서 언니가 아니라 다방면으로 어린 친구들을 품어주는 언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가족들의 기대를 져버리고 옥살이를 할 만큼 특별한 이유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의 30년이 지난 삶의 모습도 딱히 특별하지 않다. 경북 상주로 귀농을 한 하동과 채복은 하루 일과가 단순하다. 다큐멘터리는 그들의 담백한 일상을 배경으로 옥중생활 당시 주고 받았던 편지를 읽으면서 과거를 회상한다. 특별한 나래이션도 역사에 대한 부연 설명도 없다. 중간 중간에 2017년의 시위 모습을 교차 편집하여 현대사를 환기시킨 것 이외에 오로지 둘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90년생 내 또래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절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근로자의 날이 맞는 표현이라 생각하고 그 날이 왜 51일이여만 하는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개인의 부족함으로 여기기에는 억울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역사 시간에 6월 항쟁은 이름만 언급되기도 바빴고 성실하고 부지런한 일꾼으로 자라야 할 아이들에게 노동자대투쟁 대신 한강의 기적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어떤 이들에게는 설명이 부족하고 담담하게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특별하지 않았던 동기, 소박하고 평범했던 사람들, 그들이 거대한 한국사회의 역사에 저항하고 운동을 주도했지만 거대한 권력 앞에 잃을 것이 많았고 잊혀질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그 평범한 사람들은 오늘날, 지금 이 순간에도 저항하고 있다. 잊혀지고 좌절한 평범한 사람의 이후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았고 보고 나면 좌절했지만 이후에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라는 동화 결말을 전하는 듯 하다. 그것이 주는 메시지와 여운이 참으로 깊다.

 

 

 

 

 

남승석: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 하동채복의 감독 남승석입니다.

진행자: 장편의 다큐멘터리를 끝까지 자리 지켜준 관객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제가 먼저 질문 하나를 여쭙고 관객들과의 대화 이어가고자 합니다. 영화의 구성 자체가 굉장히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초반부의 편지 읽기라던지, 두 사람의 이야기와 촛불집회를 연결시키는 동기 혹은 의도하신 부분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남승석: 제가 사적인 자료를 조사하던 중 옥중 편지를 한 박스 가지고 계시는 김하동, 김채복 선생님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김하동, 김채복 선생님의 편지 이야기를 어떤 구성과 스타일의 다큐를 만들지 구성을 했습니다. 제가 에롤모리스 다큐멘터리 감독을 롤모델로 논문을 썼었고 에롤모리스의 메모를 활용하는 방식을 차용하면서 기존의 스토리와 현대사를 연결시키는데 차이점을 두었습니다. 때마침 촛불집회를 촬영하던 중이었습니다. 젊은 세대에 있어서는 촛불집회가 처음일 수 있겠지만, 1987년 과거의 운동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같은 방법은 아니지만요. 어떻게 보면 되게 보잘 것 없고 소박하고, 또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개인들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어떻게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관객 질문 및 감상평)

관객A: 작품 후반부에 콘크레인이 벽돌을 부수는 듯한 장면과 주인공들이 낮잠을 자는 등 오후를 즐기는 모습이 교차되어 나오는데 그 부분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의도셨나요?

남승석: 두 분이 30년 동안 서랍 속에 있는 옥중 편지를 읽으셨습니다. 그래서 기억이 많이 옅어지고 생생한 디테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터뷰와 퍼포먼스를 통해서 개인의 기억을 되살리는 수행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김하동 선생님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은 가슴 아픈 기억들을 빨리 잊는데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포크레인 장면은 제가 실험영화를 했어서 거기서 따온 장면입니다. 실험영화의 장면들을 통해 묻혔던 파편화된 기억들을 의도적으로 시적인 표현처럼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제가 의도했던 정답들을 알려드리는 것은 별로 좋은 것이 아니어서 이해가 안되면 안되시는 대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관객B: 저는 어제 본 영화 지슬하고 연관을 지어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슬은 제주도에 투입된 병사들이 나오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모병제였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징병제처럼 어린 병사들이 나오고 원치 않은 살상을 했던 부분이 나옵니다. 밥을 먹기 위해 총을 들 수 밖에 없었던 병사들이 있었는데 이런 병사들의 이야기는 잘 다뤄지지가 않거든요. 이 영화를 보아도 노동운동을 지휘하셨던 분들은 주인공으로 나오시지만 다른 맞서는 입장이 나오지가 않고 이 분들의 이야기가 87, 90년을 넘어서지가 않습니다. 90년대 노태우 정권 이후에 노동운동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2006년때 어떻게 귀향을 하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남승석: 영화를 구성하는 과정에 있어 많은 부분들이 제외되었습니다. 사실 저희의 원제가 1987, 2017이었습니다. 그만큼 1987년과 2017년의 순간들에 집중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궁금해하신 많은 부분들이 영화에 담기지 못했습니다. 제가 영화를 제작할 때 인터뷰어 선택에 있어 많은 유명하신 분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가장 평범하고 잊혀질 수 있는 분들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제작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희생하고 순수한 정신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과정에서, 마치 메이지유신에서 사무라이가 필요 없어지듯이 민주화 투사들이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많이 잃었습니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분들이 많았고 순수하셨기 때문에 이후의 경쟁사회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귀농하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사실 귀농하신 분들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로 많이 제작되긴 하였는데 저는 기존의 다큐멘터리와 다르게 노동 운동 후 귀농하신 분들의 사적인 자료와 거대한 역사의 흐름, 예를 들면 촛불집회를 연결시키며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질문 주신 부분들이 많이 빠져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노동운동을 하신 분들 중 정신 병원을 가신 분들도 많고 많이 좌절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운동권도 아니고 정치에 관심을 많이 가진 사람도 아닙니다. 이 분들을 제가 인터뷰어로 선택하고 관심을 가졌던 것은 현실에서 살아남으셨기 때문입니다. 생존하고 있으며 귀농해서 잘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노동운동을 하셨던 분들 중에는 지금 국회의원을 하고 계시거나 유명한 정치인들도 계시지만 많은 분들이 잘 살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 부분이 저에게는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진행자: 젊은 친구들에게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한 것 같은 기분일 것 같습니다. 젊은 세대의 친구들의 의견도 궁금하네요.

관객C: 저는 우선 영화의 구조에 있어 미장센을 신경 쓴 부분, 자연물을 활용해서 영화가 감각적으로 느껴졌어요. 내용과 관련해서는 김하동, 김채복 선생님의 이야기 중 프로메테우스 비유가 좋았습니다. 1987년에 노동자 운동에 불을 전했고 2017년에 그 불이 촛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진행자분 말씀처럼 시간여행을 한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남승석: 프로메테우스와 관련돼서 이야기를 드리자면, 프로메테우스가 마르크스의 전기였다고 합니다. 저는 김채복 선생님이 옥중에서 프로메테우스 책을 읽으셨고 편지에 프로메테우스에 관한 내용이 많길래 서로에게 서로가 프로메테우스라 여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뷰 중에 물어보았는데 어떻게 프로메테우스를 비유할 수 있겠느냐 이야기 하셨습니다.

가족들의 기대를 버리고 감옥에 가시고 그 가족들이 면회를 왔을 때 그 분들이 겪었을 고통, 순수한 정신 그리고 본인들이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셨던 그런 것들이 저에게는 굉장히 감동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 조심스럽지만, 어떻게 보면 민주화 운동에 있었던 많은 분들이 정치적으로 성공하셔서 지금은 다른 세상이 왔습니다. 하지만 그분들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권력을 쥔 사람들입니다. 그에 반면, 순수한 정신을 구현하셨던 분들은 자신을 희생하고 지금도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독립투사들도 그랬고 세월호에도 있고 선교사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상황에 놓여진 사람들에 대해서 기억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희생한 많은 사람들이 잊혀지고 성공한 사람들과 역사만 남기 때문입니다. 파멸할 지 언정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