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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제10회 부산평화영화제/관객과의 대화

[공식경쟁6] <리틀보이 12725> GV

 

일시: 2019년 5월 26일(일) 11시
진행: 황예지 (사단법인 부산어깨동무 간사)
게스트: 김지곤 (≪리틀보이 12725≫ 연출)
작성: 황진솔 (부산평화영화제 대학생 자원활동가)

 

진행자: 먼저 감독님께 어떻게 제작하게 되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김지곤 감독: 부산민주공원 소식지에서 서거 10주기 추모 행사 중 기념식수 사진을 보고 김형률 선생님을 알게 되었어요. 이후 선생님의 아버지 연락처를 받아 연락하고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관객: 원폭피해자들은 처음에 모르는 사이였는데 어떻게 당사자끼리 집단을 만들 게 되었나요?
김지곤 감독: 원폭 피해자 1세들은 자연스럽게 합천지역에 모여 살게 되면서 마을들이 소규모로 구성되었어요, 합천군에서는 옛날부터 원폭피해자들에 조사가 이뤄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모이신 것 같고요. 2세 환우회의 경우에는 김형률 선생님이 처음으로 결심하신 뒤 모이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두 명으로 출발했어요. 그 중 조금 더 건강하셨던 김형률 선생님이 대외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셨고, 계속적인 활동을 통해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어요. 매년 5월 마지막 주 토요일, 김형률 선생님의 추모제를 해요. 올해는 처음으로 합천에서 진행되었는데 이번에도 많은 분이 찾아주셨어요.

관객: 김형률 선생님의 가족들은 피폭과 관련해 증상이 있으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김지곤 감독: 아버님께선 히로시마에 안 계셨기 때문에 피폭되지 않으셨어요. 어머니께서는 피폭되신 후 연세가 드시면서 증상들이 생겨 치료를 받으셨고, 현재는 요양원에 계십니다. 형제분들의 건강은 괜찮으신데, 김형률 선생님이 쌍둥이로 태어나셨거든요. 쌍둥이 형께서 두 돌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어요. 원폭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진행자: 감독님의 초기작 <오후 3시>에서 공간 안에 머무는 시간과 사유가 천천히 드러나는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이번 작품에서도 전작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김형률 선생님의 모습을 바로 보여주는 대신 선생님의 일기장과 방을 보여주셨어요. 영화에서 김형률 선생님의 방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김지곤 감독: 2008년 단편을 시작으로 작업을 이어오면서 천천히 호흡하는 방식이 저한테 맞다고 생각했어요. 방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에서는 불꽃놀이와 조카분의 인터뷰가 나오잖아요. 조카분이 삼촌을 바라보는 시선이 제작진의 시선과 비슷했어요. 선생님의 방을 바라보면서 선생님이 이 방에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생각하게 되는 거죠. 방 안에서 창문 너머를 내다보기만 했을 모습, 창밖의 소리. 조용히 방을 채우는 시계 초침소리 같은 것들을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이 처음부터 등장하지 않았던 것은 조금 더 멀리서부터 출발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수많은 리틀보이가 생기게 된 원인인 후쿠시마, 나가사키 그리고 합천까지 선생님의 영혼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을 담고 싶었어요. 또 어머니는 아들이 극락에 가기를 바라시지만, 가끔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선생님의 시선들을 유지하면서 촬영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진행자: 차이코프스키의 음악 ‘현을 위한 세레나데’가 흘러나오면서 일련의 장소가 비치는데, 그 시퀀스의 촬영 장소는 어디인가요?
김지곤 감독: 히로시마의 숲, 나가사키, 사이판, 지리산 등을 배경으로 두고, 충돌되는 이미지를 찾아 완성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을 위한 세레나데’ 시퀀스는 『카운트다운 히로시마』라는 책을 읽고, 과거 핵폭발 실험 당시 카운트다운이 ‘현을 위한 세레나데’와 주파수가 겹쳐 음악이 함께 흘러나왔다는 점에 착안해 구상하였습니다.
원래는 그 시퀀스에도 자막이 들어있었는데, 다큐멘터리에 있어서 어디까지 자막으로 설명할 것인가 하는 부분을 고민했어요. 관객들이 생각할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자막에 시선이 가면 그 시간을 빼앗길 수 있으니까요. 음악과 화면 이미지에 더욱 집중하길 바랐기 때문에 자막을 넣지 않았습니다.

관객: ‘현을 위한 세레나데’와 함께 경쾌한 노래도 한 곡 나오는데, 이건 어떤 곡인가요?
김지곤 감독: 음악 감독님이 부르셨고요.(웃음) 엉클밥이라는 밴드의 곡입니다. 영화보다 먼저 노래가 나온 상태였어요. 경쾌한 리듬과 달리 가사들은 텍사스에서 핵실험 할 때 과학자들이 실제로 했던 말을 가사로 쓰셨다 해요. 

진행자: 원폭피해문제는 식민지 수탈과 제국주의 당시 일본 및 미국의 역사적 책임이 있는데도, 개인이 오롯이 짊어져야 했던 사회적 맥락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영화를 통해서 구체적인 설명보다는 음향과 화면 이미지의 충돌을 통해 그런 부분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도록 표현해주신 것 같아요. 역사적 책임과 관련해서도 이야기 나눠주실 사람이 계신가요?
관객: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식민지 정복에 대해 사죄하지 않고 있는 일본의 책임이 큰 것 같아요.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1964년 한일협정에 의해 개개인의 청구권이 박탈되었다는 점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관객: 2015년도 김형률 선생님 서거 10주기 당시 선생님의 기록으로 박물관을 만든다 하셨는데요. 자료들은 어떻게 열람할 수 있고, 박물관 건립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김지곤 감독: 영화 속에서 방에 있는 짐을 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날이 부산민주공원에 그 자료를 기증하는 날이었어요. 그래서 현재는 선생님의 자료를 보기 위해서는 민주공원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의 기념관과 관련해서는 유족들이나 기념 추모사업회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관객: 영화의 처음과 끝에서 동상이 나오는 장면에 전깃줄이 보이는데, 연출하신 의도가 있으신가요? 그리고 카메라가 방을 비출 때 시계 초침이 거꾸로 가는데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김지곤 감독: 동상 전깃줄은 찍다 보니 그렇게 나왔습니다.(웃음) 동상을 만든 작가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자면, 제국주의를 찬양하던 사람이에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만든 수많은 동상들은 전쟁 당시 무기 조달을 위해 다 녹여졌다고 하더라고요. 저 동상은 일본 시민의 모금을 통해 완성된 것인데, 워낙 거대해 올려다보듯 촬영했더니 행사장에 있던 전깃줄이 함께 찍힌 것 같아요.
선생님 방의 시계 초침은 정방향으로 흘러가다가 역방향으로 바뀌죠. 선생님 방은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계속 지켜지고 있지만, 선생님이 고민했던 부분들은 계속 제자리를 맴돈다고 생각해서 시계 초침을 통해 표현했습니다.

관객: 영화 속에서 자신들은 피해자라는 일본의 입장이 잘 드러나는 것 같아 이 영화를 통해서 일본의 인식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혹시 일본에서의 상영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김지곤 감독: 일본 야마가타국제 다큐멘터리영화제에 출품하긴 했는데, 선정은 저희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일본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제작 때부터 중요하다고 생각해왔어요. 계속 시도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이번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피폭 2세대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분들의 아픔에 공감해주셨던 것 같아요. 저희 평화영화제도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작은 변화의 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야학 시절을 보여주신 장면에서는 평범하게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며 살고 싶었던 열망, 삶에 대한 애정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관객 입장 때 ‘새마음 김형률’이라는 소책자를 나눠드렸습니다. 감독님의 향후 계획과 함께 소책자 안의 시 가운데 감독님께서 좋아하시는 시를 낭독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지곤 감독: 선생님의 시 중 ‘한걸음’이라는 시의 마지막 행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작은 사람을 위한 한 걸음을 위해서.’
선생님의 작은 한 걸음을 시작으로 연대가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아요. 향후계획은 다큐멘터리 해협이라는 작품의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어 조만간 찾아뵙기 위해 열심히 작업하고 있습니다. 오늘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