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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제10회 부산평화영화제/관객과의 대화

[공식경쟁2] <달과 닻> GV

 

일시: 2019년 5월 25일(토) 11시

진행: 윤내경 (부산평화영화제 집행위원)

게스트: 방아란 (≪달과 닻≫ 연출)

작성: 황진솔 (부산평화영화제 대학생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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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영화를 보며 감독님께서 이런 소재를 가지고 다큐를 만드셨다는 데에 놀랐습니다. 이 소재를 선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지 먼저 여쭙고 대화 시작해보겠습니다.

방아란 감독: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 저도 잘 모르고 있다가 그런데 우연히 다른 촬영을 도우러 가서 선생님을 뵙게 되었어요.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비전향장기수의 삶이 제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을 영화로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에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관객: 비전향 장기수눈 어떻게 해서 남으로 넘어오게 되셨나요?
방아란 감독: 많은 분이 다양한 배경에 의해 남으로 넘어오셨어요. 영화의 주인공인 박희성 선생님은 굉장히 어릴 때부터 북한 노동당 당원으로 활동을 하시다가 개인적인 지병으로 인해서 당원 활동을 그만두고 당에서 운영하는 영화관에서 일하셨어요. 이후에 당에서 남한파견근무 제의를 받아 남으로 오시게 되셨습니다. 파견근무를 하며 3년 정도 되는 기간에 배를 이용해 소위 말하는 간첩들을 북에서 남으로 실어 나르는 일을 하셨어요. 그래서 배를 타고 오갔던 기억이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관객: 과거에는 비전향 장기수가 북으로 송환된 적이 있는데, 현재 우리 정부에서는 이와 같은 움직임이 있을까요?
방아란 감독: 말씀하신 대로 2000년에 북한의 장기수분들의 송환이 있었어요. 자의에 의해 전향을 하신 분도 계시지만, 비전향 장기수 중에는 고문 등 강제적으로 전향을 하신 사람들이 계세요. 당시에는 끝까지 전향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만 송환이 되셨어요. 하지만 남은 사람들도 자의에 의해 전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본인이 비전향 장기수라 불리길 원하시고, 2차 송환도 굉장히 바라고 계세요. 최근 남북관계가 좋아지면서 2차 송환에 대한 기대가 더 높아졌는데, 아직까지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관객: 어르신의 아드님은 생사확인이 되나요?
감독: 어렵기는 하지만 생사 확인 정도는 노력을 하면 알 수 있다고 해요. 그런데 주인공이신 박희성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본인이 일부러 알고 싶어 하지 않으세요. 선생님께서는 현재 북의 모습을 당신이 북에 내려오시기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생각하려고 하세요. 실제 상황을 알게 되면 너무 가슴이 아프니까요. 구체적인 상황은 알고 싶어 하지 않으시다보니 생사확인은 잘 모르실 것 같습니다.

관객: 남한에서 공작활동을 하다 붙잡힌 과정에서 전쟁포로에 준하는 대우를 받으셨는지, 출소 후에는 어떤 삶을 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감독: 사실 이 분들이 붙잡힌 시기는 반공의 시대였기 때문에 전쟁포로의 개념보다는 북에서 내려온 간첩이라는 인식이 강했어요. 감옥 안에서는 고문이나 비인간적 대우가 굉장히 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더 각별하셨는지도 모르겠어요. 많게는 30년 정도를 감옥에 있다 출소했을 때에는 이미 전향을 하신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이었지만 갑자기 남한 사회에 던져진 것이나 다름없다 보니 초기에는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컸습니다. 취직하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에 일용직을 전전하셨고, 계실 곳도 마땅치 않았어요. 영화에 나온 집은 한 개인이 비전향 장기수분을 위해 지원하신 곳이라 해요. 현재는 기초수급비 정도를 지원 받으면서 생활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관객: 제목이 왜 <달과 닻>인가요?
감독: 선생님들과 관계를 쌓아가며 이 이야기를 이념보다는 사람의 이야기로 풀어나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이 처음으로 북에서 나오실 당시 정박을 하고 어두운 밤이 되기까지 숨죽여 기다리셔야 했어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을지 생각하며 떠올렸던 이미지가 영화의 주제를 관통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이라는 이상, 신념이 있지만 그대로 행동할 수 없고, 현실에 닻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담고 싶었어요.

관객: 이런 소재로 영화를 찍으신 데에 있어 감독님의 안위에 위협은 없었나요?
감독: 지인이 북한에 대한 다큐를 제작할 때, 그런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작업물을 압수해가는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박희성 선생님도 제가 선생님 방에 있는 비디오테이프를 찍으면 저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고 걱정하셨어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은 바뀌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제 세대는 반공의 시대를 지나왔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자기검열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곤 합니다. 그런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자체가 조금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관객: 이 영화의 주제는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감독: 비전향 장기수에 대해 공부를 해도 그것과 그분들의 실제 삶은 많이 다르다는 것에서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제가 비전향 장기수에 대해 많이 알 수 없다면, 그것을 설명하는 영화 보다는 이분들과 관계를 쌓으면서 제가 겪은 시간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나와 다르고 낯선 사람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거든요. 그래서 박희성 선생님이 살아오며 느끼셨고, 느끼고 계신 것들에 초점을 맞췄어요. 간첩이라 생각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서 이러한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걸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했습니다.


 

진행자: 감독님께선 반공에 대해 겪어볼 수 없었던 세대이시잖아요. 그렇다보니 어찌 보면 가장 솔직한 시선을 가지고 이 소재에 대해 접근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들을 어떤 틀에 가두기보다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같이 우리도 공감할 수 있는 그들의 감정에 접근하신 것이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관객: 앞으로도 비전향 장기수와 관련된 작업을 이어나가실 예정인가요?
감독: 영화에 다 담지는 못했지만 이 작업을 통해 알게 된 게 참 많아요. 선생님들과도 자주 뵙고 있어요. 다음 작품을 제작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사람이나 이념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진행자: 찾아주신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감동을 얻고 간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감독님께도 이 자리가 대중과 만나는 또 다른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 인사 말씀 듣고 관객과의 대화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독: 이 영화를 처음 상영한 것이 작년 9월이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상영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곳에서 상영할 기회 주시고,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오늘 영화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