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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제10회 부산평화영화제/관객과의 대화

[공식경쟁4] <사수> GV

 

일시: 2019년 5월 25일(토) 16시
진행: 박지연 (부산평화영화제 프로그래머)
게스트: 김설해, 정종민, 조영은 (≪사수≫ 공동 연출)
작성: 황진솔 (부산평화영화제 대학생 자원활동가)

 

진행자: 사수를 만드신 김설해, 정종민, 조영은 감독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영화가 마무리되면서 제작단체 공룡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어요. 공룡은 어떤 곳인가요?

조영은 감독: 공룡은 청주에 있는 단체고요. 지역에서 반자본주의적인 실험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단체예요. 교육, 미디어운동, 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지역 내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활동에 함께하며 다양한 연대를 진행해오던 중 자연스럽게 충북에 있는 유성노조파괴에 관심을 갖게 되어 그 이야기를 영화에 담게 되었습니다.

진행자: 영화 제작 과정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김설해 감독: 2011년 노조파괴로 어지러웠던 시기에도 잘 이겨낸 분들이기에 유성노조원분들은 저희에게 든든한 분들이었지, 힘들어하고 상처 입은 분들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2016년 봄, 열사의 장례식이 있고 나서 저희는 이제까지의 연대방식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었어요. 그 과정에서 이제껏 해오던 짧은 속보가 아닌 장편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분 곁에서 함께자자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한광호 열사님의 장례식을 시작으로 2년 8개월간 작업을 진행했어요. 장례식 후 1년 정도까지 촬영을 이어나갔는데, 실제로 영화에 담긴 부분은 장례식 후 6개월 정도까지입니다. 제작비는 DMZ국제다큐영화제의 제작지원을 통해 지원받을 수 있었어요. 영화의 취지에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후반작업은 소셜펀딩을 통해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관객: 공동작업을 하시며 각자 주안점을 두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김설해 감독: 영화를 찍기 직전이 사회활동이 이어지면서 연대했던 현장이 안 좋게 정리되는 데에 지쳐가던 시기였어요.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 해나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잖아요. 유성 동지들도 9년째에 접어들었고, 초반의 분노나 당위만 가지고 버티기에는 긴 세월을 싸워내고 계세요. 하지만 계속 버티고 계시죠. 그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정종민 감독: 제가 마음이 갔던 부분은 영동군이라는 공간이었어요. 조합원들은 어린시절부터 영동군이라는 같은 동네에서 많은 경험을 함께했거든요. 영동이라는 공간에서 고통의 순간을 보내기도 하셨지만, 영동지역에서의 오랜 관계의 시간이 조합원들을 특별하게 이어주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일상에서의 관계망들을 조금 더 담고 싶었습니다.  

관객: 감독님들도 촬영하셨지만, 선전부장님도 카메라를 들고 열사 투쟁 상황을 기록하셨어요. 감독님들께 선전부장님은 어떻게 다가왔나요?

조영은 감독: 우선 선전부장님께서 5·18노조파괴이후 고통의 시간을 딛고 회복하려 노력한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어요. 선전부장이라는 자리는 굉장히 힘든 자리예요. 기록한다는 것은 행동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지 못하고 침묵한 채 다른 이들의 행동을 기록하는데 충실해야 하니까요. 기록도 굉장히 적극적 행동이지만, 막상 그 역할을 맡게 되면 또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관객: 다큐멘터리이다 보니까 도중에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작업하셨을 것 같은데, 완성된 영화를 보시기에 제작 당시의 의도가 잘 반영된 것 같으신가요?

 

정종민 감독: 촬영 초반에는 카메라를 들고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저희도 심적으로 혼란스러워 조합원들을 바라보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어요. 그 시기가 지나고 저희가 열사 투쟁 상황에 적응될 무렵에는 집회무대에서 발언을 할 때 혹은 일상에서 조합원들 각자가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고 계신지에 대해 좀 더 차분히 바라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제작과정에 있어서는 저희가 장편 다큐는 처음이라 뭔가를 가늠하거나 상정해보는 게 쉽지 않았어요. 영화가 완성된 후 주인공들을 모시고 시사회를 했어요. 많이 우시기도 하고, 별말씀 없이 고생했다는 말씀도 해주셨어요. 한편으로는 영화 속에는 그분들의 내밀한 이야기들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혹시 왜곡되거나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됐어요. 그래서 확인차 영화에 대해 여쭤봤는데 다들 괜찮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너무 가볍거나 왜곡되지 않게 우리가 본 것을 담아냈구나 하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관객: 영화 속에서 목공작업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생계수단을 위해 그 일을 하게 되신 건지, 그리고 현재 노조원분들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김설해 감독: 그 분은 5·18직장 폐쇄 당시에 트라우마와 유성에서의 차별과 폭력으로 인해 마음의 병을 앓고 계신 분이었잖아요. 본인 스스로 마음을 다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어요. 병원 치료를 받으신 것도 있지만 낚시나 목공 같이 몸을 쓰시는 일을 계속 하셨거든요. 목공작업은 취미이시고, 당시 만들었던 가구는 아내분께 선물하고 싶다 하셨어요. 아직까지 많은 분들이 남아계시지만, 작년 말 해고근로소송 승소를 통해 영화에 나오신 분들은 모두 복직을 하셨어요. 다만 몸과 마음이 안 좋아 복직을 안 하신 분들도 계십니다. 현장에선 배임횡령에 대한 추가적 처벌 원하는 법적 투쟁도 계속 진행되고 있어요.

진행자: 노조파업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것인가요?

정종민 감독: 현재는 일상적 감시·통제가 덜해진 상태예요. 그동안 유성을 언급·보도했던 언론사에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 기사 정정 요청을 했어요. 하지만 사실상 여전히 투쟁의 연장선에 놓여있어요. 현장에선 언제든지 상황이 바뀔 수 있으니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니까요. 그래서 단체협약을 통해 노조파괴사실을 인정하고, 사과와 함께 재발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라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요.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인 거죠.  

진행자: 영화제목이 <사수>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조영은 감독: 이 작품을 제작하기 전 짧은 다큐를 제작했는데, 금속노조에 남아 투쟁을 이어나가고 계신 분들의 이야기였어요. 당시 사수조가 천막을 지키고 있었거든요. 밥, 빨래 등의 지원을 해주신는 분들이었는데 그때 일상을 살아가고 함께하는 것이 사수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이 작품의 제목도 <사수>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더 직접적인 비유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목숨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잖아요. 그 의미가 어느 순간 무겁게 다가왔어요. 참고로 영화의 영문제목이 <for dear life>인데 그 뜻이 ‘죽을힘을 다해서’, ‘자신의 소중한 삶을 위해서’예요. 

 

진행자: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될까요?

김설해 감독: 유성뿐만 아니라 충북지역에 노조파괴사업장이 많이 있어요.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노동 등 그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게 될 것 같아요. 저희 개개인이 어떤 형태의 영화를 만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저희는 언제든 할 생각입니다. 유성의 상황은 계속 기록하고 있습니다. 투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이 어떻게 이어질 지 궁금해요. 저희도 계속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감독님들 마지막 인사 부탁드립니다.

조영은 감독: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수> 상영 때마다 격렬한 노동자의 삶이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를 생각하게 되는데요. 이 분들이 우리와 아주 다른 사람들이 아닌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하시고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종민 감독: 평화라고 하는 것들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마무리되어야 하는지 생각해보면 결국엔 나와 내 주변의 관계들 속에서 찾아오는 순간들이 평화의 도착지인 것 같아요. 유성 동지들도 그런 상황을 위해서 열심히 하고 계시고요. 찾아주신 분들도 유성의 상황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 함께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설해 감독: 노동자분들의 모습을 어떻게 보셨을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보면 조금 불편하게 느끼셨을 수도 있고, 안타까워 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영화에는 조합원 간의 연대뿐 아니라 관계가 흔들리는 모습도 나와요. 유성 동지들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공동체로서 살아가려고 하는 분들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비슷한 방식을 하려고 했던 저희도 그분들의 투쟁에 마음을 빼앗겼던 게 아닐까 해요. 그런 삶을 고민하고, 그렇게 살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영화를 통해 공감하실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