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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제10회 부산평화영화제/관객과의 대화

[공식경쟁5] <졸업> GV

 

일시: 2019년 5월 25일(토) 19시
진행: 정윤주 (사단법인 부산어깨동무 사무국장)
게스트: 박주환 (≪졸업≫ 연출)
작성: 김지수 (부산평화영화제 대학생 자원활동가)

 

박주환 감독: 안녕하세요. <졸업>을 만든 박주환 감독입니다. 

 

진행자: 저는 부산평화영화제를 주최하고 주관하는 부산어린이어깨동무의 직원 정윤주라고 하고요. 제가 영화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 영화가 학교라는, 학생이라는 경험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울림을 주기도 하고,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 곳곳의 부조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이야기로, 그리고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지 않을까하여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려고 합니다.영화가 감독님이 이야기에 대한 당사자로서의 시각이 담겨있어서 굉장히 생생하게 다가오기도 했었고 10년간의 이야기라 굉장히 많은 기억을 담고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좋은 반응을 얻고 계십니다. 

 

박주환 감독: 질문이 아니어도 좋고요, 영화에 대한 소감, 뭐든 것 상관없습니다. 자유롭게 저한테 하고 싶은 말씀 하세요.

 

진행자: 여러분이 생각을 정리하시는 동안, 제가 궁금한 것을 여쭙고 싶은데요. 10년 동안 촬영한 영상을 편집하여 작품을 만드신 건데, 물리적으로도 굉장히 힘든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감독님의 이야기라 감정을 다시 불러일으키지 않았는지 궁금하거든요. 감정의 문제가 정말 힘들었을 거 같아요. 

 

박주환 감독: 10년 정도를 촬영했는데, 분량이 5테라가 좀 넘어요. 회차는 450회 정도가 돼요. 제가 (직접) 카메라로 촬영한 적도 있고, 안 한 적도 있었는데. 450회 정도 되는 분량을 편집하는 게 솔직히 쉽지 않았어요. 한 번씩 보고 그 중에서 선택을 하는데, 매일 아무것도 안하고 편집만 하는 과정이 6~8개월 걸렸어요. 그리고 화면에 나오는 장면들이 보기가 힘들어서 편집을 못했거든요, 중간에. 아름답거나 행복한 장면들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보는 게 너무 힘들어서 편집을 못했는데, 학교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나서 마음이 편해져서 편집을 할 수 있었고, 이게 또 저의 자전적인 이야기이기도 하잖아요. 내레이션 분량은 A4 한 장 정도 밖에 안 되거든요. 다큐멘터리에서 내레이션을 사용한 것 치곤 많은 분량은 아니거든요. 근데, 내레이션을 하는 데 4~5시간이 걸렸어요. 내레이션을 하면서 10년 전의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이 나이에 이렇게 살았구나. 그때, 되게 힘들었거든요. 왜냐면, 견뎌냈던 과정들이, 저도 내레이션을 하면서 이렇게 힘들었는지 알았어요. 그러니까 트라우마가 있었다는 거 자체를 몰랐어요. 내레이션을 하면서 그때 당시를 회상하면서, 그 내레이션을 도와주시는 분이랑 되게 개인적인 친분도 있고 12년 동안 관계를 쌓은 분이라서 서로 울면서 내레이션을 했거든요. 그게 아마 10년을 돌아보는 과정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진행자: 10년의 시간을 복기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 거 같아요. 지금의 (학교) 상황에 대해선 알고 있으신가요?

 

박주환 감독: 문재인 정부 이후 학교의 이사회는 전부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총장 직선제를 통해 그 영화에서 유괴당할 뻔 하신 분이 계시잖아요. 그 교수님이 총장이 되셨고, 학교는 나름대로 민주적 절차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실 저는 학교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알아서 잘 되겠지.’ 하는 마음이 있고요. 그 이후의 과정들은, 내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제 개인의 삶도 있으니까...학교를 별로 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진행자: 상지대가 처음엔 사학비리를 대표했지만, 결국엔 민주화를 이루어내었잖아요. 이러한 결과를 해피엔딩으로 보기엔 어떻게 보면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저는 해피엔딩이라고 보거든요. 10년 만의 성취가 지금의 감독님께 주는 영향이 있을까요?

 

박주환 감독: 학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아직도 저는 거기서 찍고 있지 않았을까요?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이 들고요. 구성원들과 학교는 안정화가 되었어요. 분쟁이나 갈등은 없어요. 교육과 연구할 수 있는 환경도 안정적으로 되어있어요. 그렇지만, 이런 점도 있어요. 당시에 정말 열심히 싸웠던 학생들, 졸업생들은, 영화 맨 마지막 부분에 명식이와 같은 부분을 보면 되게 여러 생각을 하거든요. 왜냐면 저렇게 열심히 싸웠던 친구들인데 저들의 삶은 뭐가 달라졌을까? 이런 질문을 하고 싶었어요. 말씀대로 학교는 안정화가 되었고 신입생들, 교수님들은 안정적으로 생활하지만, 그것에 열심히 싸웠던 졸업생들은, 그냥 싸웠다는 기억만 남아서 허망하기도 해요. 졸업생들을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우리가 어떤 것들을 바라고 싸운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졸업생들이 졸업 이후에 1~2년 동안 취업을 못했어요. 그들이 했던 활동과 지식은 다 취업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혼란이 많았죠. 저도 대답으로 해줄 말이 없기에 다큐로 만들었어요. 우리가 이러한 과정을 버티면서 싸웠던 게 정의롭고 멋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제가 악착같이 열심히 만들어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학교를 바라보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껴요. 그래서 저는 학교 내부 구성원이 학교를 잘 만들면 좋겠어요.

 

관객 1: 네, 영화 잘 봤습니다. 저도 신문 보도로 접하긴 했지만, 지속적으론 몰랐는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은, 학생 때부터 이것을 찍었는데, 10년을 찍으셨다면 졸업하고 나서 얼마나 찍으신 거죠? 그리고 두 번째로 든 생각은, (개인이) 불의에 대해 싸운다면 결과는 좋지만 그 개인은 피해를 많이 보거든요. 어떻게 보면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이 그런 경우입니다. 그런 경우를 보면 많은 생각이 들고, 감독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박주환 감독: 2009년부터 촬영했는데, 처음엔 다큐를 만들 생각이 없었어요. 처음에 영화에서 설명하지만, 저는 행정학과를 다니고 있었고, 졸업하고 행정학 전공을 살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하다가,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2008년부터 결혼식 촬영 알바를 했는데, 사장님이 영상 편집을 배워 오면 월급을 더 준다기에 영상미디어센터라는 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돼서 갔어요. 앞에 4:3 비율로 짧게 1분 30초짜리 영상이 있었는데, 그게 그 결과물이고 그게 10년 전 제 젊었을 때 목소리예요. 그리고 저는 휴학을 해서 2010년에 격렬한 투쟁의 현장엔 없었어요. 그때 저는 국토대장정을 하고 있었고, 당시 옆에 있던 친구가 “이거 너희 학교 아니야?”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더라고요. 저는 그때 부끄러웠어요. 다시 복학을 했을 때 제가 한 활동들로 인해 총학생회 자리로 추천받았습니다. 처음엔 총학생회 자리를 거부하고 싶었어요. 그 당시 총학생회장인 승현이가 같이 하자고 했는데, 저는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하고 나왔어요. 승현이가 같이 나와서 담배 하나 피자면서, 자기소개를 하고 같이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 당시 제가 활동하던 총학생회 영상은 없어요. 그리고 총학생회 활동을 끝내고 졸업을 했죠. 그러고 나서 저는, 건강이 안 좋아서 1년을 요양하고, 명식이가 뺨 맞는 걸 보자마자 분노했죠. 그리고 명식이가 삭발하는 것도 보고. 제가 느꼈던 것은 명식이가 감당하지 못할 짐을 지고 싸운다는 거였어요. 그때 명식이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발언하고 삭발하고, 그 후에 총학생회실에서 한 시간 정도 명식이와 이야기하면서 명식이가 많이 힘들어하는 것을 느꼈어요. 옆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이후로 계속 같이 있었어요. 그리고 원주가 집이라서 계속 촬영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2018년 2월, 명식이가 표창장을 받는 날까지 촬영했고, 그 이후에도 인터뷰를 해야 했으니까 3월까지 촬영했죠.

 

진행자: 감독님도 초반엔 이런 사건에 관심이 없었지만, 바뀌게 되셨고, 영화 중반에 다소 소극적이던 학생들도 나중에 졸업식 중간에 내려와서 항의하는 것을 보면 큰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변화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박주환 감독: 일단은 본인이 느껴야 가능한 것 같아요. 본인이 현장에서 분노를 직접 느껴봐야 해요. 저도 2011년에 처음 1인 시위하기 전날에 많이 두려워서 전날 잠이 안 왔어요. 1인 시위하는데 사람들이 말을 걸면 어쩌지? 이런 생각도 들고. 두려워요, 솔직히. 그냥 하는 거죠. 요즘엔 대학교에 운동권 문화가 사라졌어요. 저도 제 선배 중에서 딱 한 명 봤어요. 그냥 같이하니까 할 수 있었던 거예요. 1인 시위라고 해도, 저희는 1시간씩 돌아가면서 했어요. 함께하는 사람들이 계속 있어서 조금 나았어요. 준석이가 졸업식장에 뛰어내렸던 것도 학생들이 지지해주었기 때문이거든요. 함께하는 사람들의 힘이 제일 커요.



관객2: 이게 10년 동안 하신 거잖아요. 이 사건이 완전 해결되었다고 말하긴 그렇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기에 영화를 끝낼 수 있었잖아요. 영화를 끝낸 기분은 어떠신지, 그리고 학교 문제 말고 촬영하고 싶은 다른 것은 무엇인가요? 부총장님의 근황도 궁금하고요.

 

박주환 감독: 부총장의 근황은 행정 처리 중에 실수하셔서 해임이라는 징계를 받으셨고요. 현재 수업을 못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돌아 올 듯합니다. 노동법상 교수를 자르는 것은 정말 어렵거든요. 두 번째 답변은 영화를 이미 작년에 학교에서 상영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요. 저 정말 이 영화 편집하면서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건강도 나빠지고 그랬거든요. 그리고 이게 영화냐는 질문도 받았어요. 애초에 다큐를 영화로 취급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상영을 하면서 조금씩 듣는 이야기나 얼굴도 모르는 한 신입생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정말 감동이고 힘을 얻어요. 제가 고생한 것을 알아주었다는 고마움이죠. 그래도 독립 영화는 보여줄 방법 자체가 없고 보는 사람도 정말 극소수라서 힘들고 허무하죠.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고요. 이것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저는 애초에 감독이 될 마음이 없었어요. 지금은 원주에서 매달 한 번씩 상영회를 열어요. 요즘 청년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어요. 정책이 나오는 것을 보면 진지하게 생각하고 내는 것인지 의문이 들어요. 그래서 그러한 생각을 다큐로 찍고 있는데 최소 3년은 걸릴 것 같아요. 부산국제영화제를 가면 ‘와 진짜 잘 만든다.’하는 다큐 영화들이 많았는데, 저는 그럴 능력은 안 되는 거 같아요. 또 영화를 만든다면 이런 영화 방식을 취할 것 같습니다.

 

진행자: 청년의 시각을 느낄 수 있는 영화를 2023년에 볼 수 있길 바랍니다.

 

관객4: 학생회장이 되실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박주환 감독: 전부 다 학생회장을 안 하려 했어요. 저도 안 하고 싶었죠. 주변에서 한 달 동안 저를 설득했어요. 여러 가지 생각을 들었어요. ‘왜 나한테 하라고 하지?’ 이런 생각들. 그러다가 주변 사람의 기대가 있어서 받아줘야겠다고 결심했죠. 그 당시 제1선거 구호가 ‘상지대를 민주화하겠다.’ 이거였어요. 그래서 2주 동안 열심히 외치고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게 약속이 되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너무 거대한 권력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사람들이 궁금해해요. ‘어떻게 10년이 될까?’ ‘어떻게 학교를 사랑할 수 있지?’ 저희는 사랑하지 않아요. 그냥 내가 다니던 학교라고 생각해요. 그냥 거기 있던, 그 학교에 다니던 사람들이 좋았기 때문이에요.

 

진행자: 저는 가장 인상 깊고 화가 났던 장면이 “등록금을 안 낸 게 학생이냐?”라고 하는 거였어요.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감독님의 책 추천입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인데요. 설명 부탁드립니다.

 

박주환 감독: 제가 학교에서 투쟁하면서 정말 안 그럴 것 같던 교수, 교직원이 학생을 탄압하는 것을 자주 봤어요. ‘저 분은 왜 저렇게 할까?’ 고민했어요. 그리고 “자기는 시켜서 했다.”는 말을 많이 하셔요. 그래서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이 책에선 홀로코스트를 시작했던 사람이 자기는 시켜서 했다고 계속 말해요. 이게 비슷한 맥락 같아요. 자기 행동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것, 판단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봐요. 저는 학교를 자기 직장, 생업으로 여기는 분들이 책임을 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학교에서 아무도 학생들에게 사과한 사람이 없어요. 그 사람들의 해임을 바라진 않지만, 적어도 학생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가 필요하다고 봐요.

 

관객3: 학교 측에서 촬영을 방해하지 않았는지 궁금해요. 영화를 보면 될 수 있는 대로 물리적인 충동을 피하려고 하잖아요. 제가 92학번인데, 시위했을 땐 총장님 차를 때려 부수고 그랬어요. 저는 그러려니 넘어가는 세대였는데, 영화에선 서로서로 굉장히 물리적 폭력을 피하려는 게 느껴졌어요. 의도적인지 궁금합니다.

 

박주환 감독: 정말 고소를 많이 했어요. 영화에서도 차 안에서 바로 경찰에 전화하는 장면을 보시면 알 수 있어요. 물리적 폭력을 해봤자 얻는 게 없어요. 집회를 강압적으로 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아요. 요즘은 그런 문화가 전혀 아닌 거 같아요. 학교의 동의가 중요한 것 같아요. 개인이 물리적 폭력을 하면 감당해야 하는 게 많아요, 그리고 그 쪽에서 폭력을 유도한 것도 많았어요. 일부러 우리에 대한 안 좋은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서. 아마 학교는 이렇게 많이 상영했다는 것을 모를 거예요. ‘쟤가 뭘 하겠어.’ 이런 생각인 듯해요. 생각해보니, 제가 총학생회장이라 학교에서 터치를 안 한 것 같아요. 학교에 친한 사람들이 많았고, 싸우던 교직원, 교수들도 분쟁이 일어나기 전엔 저랑 친했던 사람들이라서 촬영을 할 때 교수들이 제 눈치를 보더라고요. 그래서 열심히 찍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