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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제10회 부산평화영화제/관객과의 대화

[공식경쟁1] <펀치볼> GV

 

일시: 2019년 5월 24일(금) 19시

진행: 김희영 (사단법인 부산어깨동무 간사)

게스트: 김영조 감독 (≪펀치볼≫ 연출)

작성: 황진솔(부산평화영화제 대학생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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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영화 첫 장면에서 “한국에는 대인지뢰로 인한 어떠한 희생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한국외무부의 입장이 짧은 문장으로 나왔어요. 그에 반하듯이 감독님께서 피해 입은 분들의 이야기를 다루어 주셨는데, 이 이야기를 다룬 시점과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영조 감독: 그 문장은 편집과정에서 접하게 되었는데 충격이 컸습니다. 저는 피해자들을 직접 보고 그분들의 얘기를 들어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대인지뢰 피해자가 없다는 말은 얼토당토않다는 것을 관철하기 위해 첫 부분에 그 문장을 배치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끝부분에서는 촬영을 접을 때 즈음 되어서도 지뢰피해자가 발생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보통 작업을 시작할 때에는 무언가 해야겠다는 사명감 때문에 움직이게 되는데, 이 작품의 경우에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서울에 올라가 이 문제에 대해 접하게 되었고, 다큐멘터리 제작 제의를 받았습니다. 강원도까지 가서 촬영할 여건도 되지 못했고, 섣부르게 접근했다가는 소재주의로 빠지겠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솔직히 무섭기도 했고요.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학교후배가 지뢰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서울에서 제가 알게 된 것들과 오버랩 됐어요. 이러한 기묘한 인연이라면 내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결국에는 제작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진행자: 사실 지뢰피해문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이상 알기가 쉽지 않은데, 이 문제가 선생님의 개인적인 배경과 맞닿아서 저희에게 영화로 다가왔다는 것이 참 특별한 일인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여러 종류의 지뢰가 나오던데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김영조 감독: M14지뢰는 일반적으로 발목지뢰로 알고 계시는 지뢰입니다. 제 생각에 M14지뢰는 가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지뢰 같아요. 발목지뢰는 밟는 순간 폭발해 발목만 절단하기 때문에 그를 구하러 온 이들까지 함께 적군에게 노려지게 되거든요.
대전차지뢰는 특정 무게가 실리지 않으면 폭발하지 않아요. 그래서 사람 한 명 정도가 올라가는 것은 괜찮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정말 위험한 지뢰예요. 대전차지뢰를 설치할 때는 그 주위로 M16, M14 지뢰를 묻어 전차와 함께 주위 병사들에게도 타격을 입힌다고 합니다.

진행자: 영화에는 크게 네 명의 인물이 나온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분이 김기호 소장님인데, 선생님과 관련된 얘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감독: 소장님은 군 생활에서 지뢰로 인해 동료를 잃은 트라우마 때문에 사명감을 가지고 지뢰제거에 힘쓰시는 분이죠. 그런데 원래 민간에서는 지뢰를 제거할 수 없다고 합니다. 국방부에서 조사가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소장님께선 활동을 계속하고 계세요. 어떻게 보면 영화를 촬영한 저도 함께 조사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 아직까지도 조마조마합니다.(웃음)
저는 소장님이 돈키호테 같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일을 계속해서 하고 계시니까요. 그런 소장님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니 소장님의 캐릭터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어요. 진지하시면서도 때로는 굉장히 허술하거든요. 눈앞에서 발견된 지뢰를 보고 무서워하는 제게 아무렇지도 않게 와서 보라 하시잖아요. 그 캐릭터 자체가 너무 재밌었어요.

진행자: 영화에서도 소장님의 캐릭터가 주는 유쾌함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소장님께서 이런 활동을 해오시면서 오해를 많이 받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감독: 소장님이 작업하신 지역이 정부의 주목을 받으면서 땅값이 오르고 있어 향간에는 그와 관련해 덕을 보지 않냐 하는 오해가 조금 있어요. 이런 오해와 비슷하게 간혹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냐는 말을 들어요. 국회의원을 찾아가는 등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특정한 정치적 성향을 띠는 영화는 절대 아닙니다. 지뢰공포와 지뢰피해책임, 지뢰에 있어서 우리 사회의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관객: 영화 중간에 애니메이션을 삽입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감독: 애니메이션을 넣은 이유는 두 가지였어요. 첫 번째는 이분의 과거를 재현하는 방식 때문이었어요. 촬영을 위해 피해자분의 사연을 계속 들으면서 문득 제가 하는 행위가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픈 기억들을 다시 끄집어내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이 분의 사연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실제 이미지보다는 다른 매개체를 통해서 그 분의 아픔을 드러내는 부담감을 줄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뢰라는 것이 잘 모르면 어떤 전설처럼 들려요. 우리와는 아무 관련 없다고 생각되니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 말이죠. 하지만 피해자 분께 그건 공포예요. 그래서 피해자분의 지뢰공포에 대한 고백과 지뢰에 대한 우리의 편안한 정서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고민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편안한 정서를 보여주는 매개체가 동화, 애니메이션이었고, 그것을 통해 피해자분의 아픔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정서가 피해자분들의 공포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관객: 영화 속에서 농담으로 저희에게 웃음을 주셨던 지뢰피해자분의 캐릭터가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그런 밝은 성격을 가지신 분임에도 피해보상에 관해서는 체념한 모습을 보이시는 것 같기도 해요. 지뢰피해보상을 받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와 피해보상금액이 적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감독: 피해보상이 힘든 이유는 단순합니다. 사실 그 자체로 지뢰피해자가 많다는 반증이기도 한데, 피해보상이 진행되면 그 요구가 늘어나게 되니 국가재정에 부담이 된다는 거예요. 피해보상금액이 적은 것은 금액 산정 자체가 월 임금이 만원도 되지 않던 당시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보니 보상금액이 100만원도 안 되죠. 말도 안 되는 논리입니다. 현재는 피해보상금액을 개정하기 위해 싸우고 있어요.
캐릭터에 대해 잠깐 말씀을 드리자면 일단 굉장히 재밌어요. 지뢰피해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그들을 슬프고, 힘든 대상으로 여겨 측은한 마음이 들게 만들죠. 하지만 그렇게만 캐릭터를 구상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영화가 피해자들의 슬픔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힘들지만 때로는 웃고, 농담도 하는 그들의 일상을 함께 보여주는 등 여러 방향을 비추는 것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구상했습니다.

관객: 제목이 왜 <펀치볼>인가요?
감독: 펀치볼은 양구 지역의 마을 이름이에요. 펀치볼의 뜻이 ‘화채 그릇’인데, 그 마을이 화채그릇을 닮았다고 해요. 그리고 가장 많은 지뢰피해자들이 계신 곳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저는 그런 지역명보다는 ‘볼’이라는 단어에 집중했어요. 그 자체가 그릇이면서 땅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지뢰로 인해 보이지는 않지만 지뢰로 인해 뚫린 것은 땅이라는 의미로 <펀치볼>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진행자: 영화를 보면서 지뢰피해자분들께 많이 공감하게 되었고, 이분들을 위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저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감독: 특별히 뭔가를 한다고 하면 지뢰를 제거하는 것인데... (웃음) 영화가 많은 분들께 선보이고, 이 문제가 공론화되면 많은 오해가 생길 거예요.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점은 지뢰가 제거되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여기 계신 관객들만큼은 그것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각자의 위치에서 계속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진행자: 직접 지뢰를 제거할 수 없다면 이렇게 영화를 보고, 평화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김기호 소장님의 앞으로의 행보를 응원하는 것도 저희가 할 수 있는 작은 발걸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긴 시간 자리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인사 듣고 대화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독: 늦은 시간까지 자리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관계자들은 여러분 같은 관객들 때문에 영화를 계속 만들게 돼요. 제 영화는 흐름을 따라가면 잘 이해할 수 있는 영화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진행자: 앞으로도 김영조 감독님의 작품에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