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평화영화제 아카이브
<어른 김장하> GV 본문
일시 : 2024년 10월 26일 14:47
장소 : 모퉁이극장
참석자 : 조정주 모더레이터, 김현지 감독
작성 : 안서정
Q. 이 영화가 작년 11월 개봉했습니다 부산 뿐 아니라 다른 지역도 많이 지휘 하셨다고 들었는데 방송으로 관객을 만나시다가 직접 대면을 하시게 되면서 그동안의 GV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A. 제일 다른 점은 2006년에 입사해서 계속 방송을 만들고 있었는데 시청자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늘 만든다고 하지만 사실 안 보이는 분들이시거든요. 그런데 영화 GV는 불이 탁 켜지면 저를 바로 눈앞에서 보고 계시는 분들과 마주 보고 묻고 답하고 대화를 나눈다는 게 처음에 굉장히 두려웠고요. 그 다음은 제가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반응들을 들려주시는 게 너무 놀랍고 반갑고 또 감사했습니다.
Q.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으신가요?
A. 제일 무서운 질문은 ‘이 영화를 만들고 당신은 얼마나 좋은 사람이 되었나요? 당신은 얼마나 어른이 되었나요?’ 늘 나오는 질문인데 매번 저를 반성하게 만들고 감사하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분은 대구 55극장에서 뵀던 30대 초반의 여성분이었어요. GV 시작할 때부터 40분이 지날 때까지 계속 울고 계시더라고요. 저는 저 분이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으셨구나 생각했는데 손을 들고 질문을 하시면서 나한테도 저런 분이 한 분만 있었으면 내가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하면서 계속 눈물이 안 멈춘다 그 말씀해 주실 때 가서 안아드리고 싶었고 이 사회가 젊은 청년들을 너무 힘들게 몰아붙이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지막에는 그 분이 눈물을 닦으시면서 내가 그런 어른이 되면 되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참 멋있다고 느꼈습니다.
Q. 어떻게 김장하 선생님은 저렇게 하실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성장하는 그런 부분도 궁금하던데 그런 건 없었는지 조사하던 중에 그런 부분이 있었는지 또 왜 빼셨는지 궁금합니다.
A. 그렇죠. 저희도 제작하면서 제일 궁금했던 부분이 ‘저 분은 왜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였는데 김주완 기자랑 같이 취재한 결과 할아버지께서 교육을 많이 해주셨다 했고, 공자, 맹자 그런 거를 많이 읽으셨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남성들의 워너비 유학자, 실천하는 학문 이런 거에 대해 많이 공부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사실 그거 듣고도 질문하고 싶었어요. 저희 부모님도 저한테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는데 저는 그렇게 성장하지 못했거든요. 그게 다는 아닐 것 같은데 선생님께도 여러 차례 여쭙고 주변에도 탐문을 많이 했지만 딱 부러지는 답을 찾을 수는 없었고요. 결국 나중에는 제가 포기를 했어요. 왜냐하면 왜 이분은 다르게 살았는지에 대한 이유를 계속 찾는 게 나는 그럴 수 없는 변명을 찾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이렇게 살 수도 있고 저 분을 온전히 닮을 수는 없지만 닮으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성장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영화에서 굉장히 많이 제외시켰어요. 김장하 선생님은 인터뷰를 하거나 이걸 영화로 만드는 데 한 번도 허락하신 적이 없거든요. 그러면 취재 윤리에 문제가 생기죠. 개인으로서의 김장하를 취재하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기에 공적인 영역에서의 김장하 선생님이 이 사회에 해준 일들, 배워야 될 일들을 기록하는 것 위주로 편집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개인적인 일화가 궁금하시면 서점에 김주완 기자의 ‘줬으면 그만이지’ 책을 판매 중이니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Q. 김주완 기자님과 같이 취재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잖아요. 이런 구성이 낯설면서도 재밌기도 했거든요. 그렇게 구성을 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A. 처음 김장하 선생님을 알게 되고 기획서를 썼을 때 이 분이 절대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취재할 생각 자체를 못했고 그래서 주변인을 취재해서 모자이크로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제작을 못하게 되면서 2년 동안 계속 고민을 했어요 수십 명의 사람들의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미지를 그려낸다는 게 너무 산만할 거 같은 거예요. 이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의 키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취재기자면 좀 더 좋지 않을까 하다가 김주완 기자를 떠올리게 됐어요. 사실 김장하 선생님은 지역의 큰 어른이시기 때문에 아무도 이 분에게 의구심을 가진다거나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걸 못할 것 같았는데 영화에서 보셨듯 김주완 기자는 얼마든지 쓴 소리를 할 수 있으실 것 같아 요청을 드렸습니다. 사실 기자와 PD는 굉장히 DNA가 다른 사람들이라서 협업 결과가 좋은 적이 거의 없거든요. 근데 이번에는 워낙 연차 차이가 많이 나기도 했지만 서로 다른 플랫폼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게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Q. 김장하 선생님은 지금 어떻게 지내시나요?
A. 60년 동안 하시던 한약방 문을 닫으시고 사모님이랑 같이 남강변에서 파크골프 많이 치셨고요. 실력은 사모님이 더 나으시고요. 등산 좋아하셔서 ‘불백산행’이라는 ‘불러줘야 나가는 백수들의 산행모임’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산행도 하시고 그러다가 점점 건강이 안 좋아지시고 여름에 너무 덥고 하니까 요즘에는 실내 자전거를 타신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계속 일을 하시다가 안 하시니까 노화 속도가 빨라지신 것 같아 걱정도 들긴 하는데 가족 분들이랑 잘 지내시고 건강관리 열심히 하고 계십니다. 저희 촬영 막바지 때 선생님이 노트 하나를 보여주셨어요. 72년도부터 개인 장학생들에게 돈을 얼마나 줬고 하는 영수증, 수기 기록들이었는데 저희가 카메라를 딱 들이대니까 슥 덮으시는 거예요. 그걸 보여달라고 그렇게 조르고 간절하게 요청드렸는데 선생님이 끝끝내 허락을 안 하셨어요. 장학생들의 홈커밍데이도 하고 싶다 말씀드렸는데 ‘너희는 잘 돼서 모이고 싶을 수 있지만 간혹 세상의 기준으로 잘 안 됐다고 스스로 판단하시는 사람들은 굉장히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내가 형평운동 하는 사람인데 그런 걸 두고 볼 수야 있겠느냐’ 그러시면서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또 장학생 자랑을 정말 좋아하세요. 평소에 곁을 잘 안주시고 말씀도 안 하시고 듣기 싫은 질문하면 고개를 돌리신단 말이에요. 근데 말문이 트이시는 게 2개가 있어요. 야구랑 장학생. 그래서 저희가 꾀를 낸 게 장학생을 모시고 가서 같이 밥 먹고 어디 가면서 하다 보니까 선생님도 나중에는 나도 모르겠다 하면서 말씀 해주시더라고요.
Q. 영화를 통해 진주의 역사와 생활, 문화들이 모두 드러났다고 생각하는데 진주 곳곳의 촬영 장소들을 신경을 쓰신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진주가 굉장히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저도 부산 태생인데 진주 도심 한가운데로 강이 흐른다는 게 진짜 아름답더라고요. 촬영 감독님이 진주를 굉장히 사랑하시는 분이어서 그 분하고 로케이션을 많이 다녔고요, 진주 가나 막창을 찾았을 때 너무 반가웠어요. 머리 희끗희끗한 두 분이 앉아서 소주 마시기에 너무 좋은 로케이션인 거예요. 그 가게를 빌리면서 너무 즐거웠고, 진주의 아름다운 장소들을 최대한 많이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Q. 가족의 입장에서는 자랑스러운 동시에 쉽지 않은 짐을 지는 마음도 클 것 같아요. 관련하여 들려주실 얘기가 있을까요?
A. 김장하 선생님이 큰 어른이시다 싶었던 게 가족들을 정말 살뜰히 챙기셨고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동생들 다 학교 보내고 결혼시키고 돌보셨어요. 진짜 어른은 자기 주변부터 잘 살피는구나 라는 걸 배울 수 있었어요. 마지막 문 닫는 장면도 다 가족 분들이시거든요. 그래서 저희 카메라가 일부러 멀리 있었어요. 가족 분들끼리 시간을 지켜드리고 싶어서. 그런 행복하고 가족들한테 사랑받는 모습이 우리에게도 위로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모님도 정말 소박하신 분이라고 하더라고요. 화장도 안 하시고 옷도 수수하게 입으시고 평생 한약방 직원들 점심을 다 직접 하셨어요. 김장하 선생님이 하시는 일에서도 ‘돈 지가 벌어서 지가 쓰고 싶은 데 쓴다는데 내가 뭐라 그래. 잘했어. 그 덕에 우리 애들도 잘 벌고 잘 살아.’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서 진짜 대단하신 분이다 싶었습니다.
Q. 김주완 기자님과 함께 촬영하는 과정에서 좋았던 점과 꼴 보기 싫었던 점 있으셨나요?
A. 일단 좋았던 점부터 할게요. 팩트 체크를 하는 게 취재할 때 제일 힘든데 기자님이 한 번 싹 하고 가시면 부담이 없어요. 또 남들은 눈치 보며 주저할 질문을 바로 해주시니 그게 정말 좋았습니다. 진짜 꼴 보기 싫었던 순간은 첫 촬영 때였어요. 저희 지역 방송사 입장에서는 4K 24프레임으로 찍는 메모리가 다 돈이거든요. 그런데 인터뷰를 네, 아니오만 대답하는 걸 2시간을 하신 거예요. 이걸 안 찍을 수도 없고 쓸 수도 없고 처음부터 제가 다시 해야 되는 상황, 그때 정말 신문기자는 안 된다 그런 생각이 들었고 말씀을 드렸어요. 다행히 수용을 빠르게 해주셨고 그 뒤로는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기자님과 성격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아 다투고 그러진 않았던 것 같아요.
Q. 이 영화를 찍기 전과 찍은 후 김장하 선생님의 달라진 점이 궁금합니다. 감독님 역시 달라진 점이 있으실까요?
A. 영화가 개봉한 뒤 선생님과 진주성 산책을 하는데 시민 분들이 알아보시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감사하기도 하면서 선생님께 죄송했어요, 오랫동안 장학금을 주시면서 ‘어른’이라는 어떻게 보면 족쇄에 갇혀 계시다가 드디어 자유인이 되셨는데 영화의 개봉으로 인해 선생님을 더 힘들게 만들어 드렸나 이런 생각이 들어 좀 죄송했고요. 선생님은 변한 게 없으십니다. 출연 섭외가 많이 들어왔는데 모두 거절하셨습니다. 여전히 밥은 저희가 못 사게 하십니다. 항상 사모님이 황금카드를 주시면서 밥을 사라고 하시더라고요. 저희 MBC 경남 같은 경우에는 지역에 뭔가 공헌을 해야겠다는 책임감이랄까요? 브랜드 이미지가 높아진 만큼 덜 부끄럽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Q. 진주 시민들의 생각이나 관점도 궁금합니다.
A. 진주 시민 분들은 그런 피드백을 많이 주셨어요. 우리 도시를 자랑스럽게 남한테 이야기할 수 있는게 참 좋다. 우리 지역에 이런 큰 어른이 있다는 걸 자랑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김장하 선생님의 일들을 아니꼬워하시는 분도 분명 지역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개봉한 후에는 공공연하게 그런 얘기를 못하게 됐죠,
Q. 김주완 기자와 또 한 번 작품을 함께 할 생각이 있으신지요?
A. 아이템만 있다면 함께 해보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김주완 기자도 은퇴한 직후니까 쉬고 싶으실 거 같아요. 기회가 된다면 해보고 싶습니다. 지역의 또 다른 어른들을 취재하기엔 다른 분들도 많이 하실 것 같아요. 저는 다른 이야기를 찾아보고 싶어요 저는 묵직하지만 소박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어필될 수 있었다는 게 개인적으로 큰 성취였습니다.
Q. 마지막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A.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장하 선생님 진주에 건강히 계시니까요, 진주에 많이 방문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을 지탱하는 평범한 시민으로 여러분 모두 제 옆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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