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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부산평화영화제/영화제 사진 및 GV

11.15. 공식경쟁 ⑥ 〈무순, 세상을 가로질러〉 GV

 

 

 

 

 

 

일시: 2020년 11월 15일 (일) 13시 30분

진행: 허정식(부산평화영화제 프로그래머)

게스트: 남승석(〈무순, 세상을 가로질러〉 연출)

 

진행자: 간단한 작품 소개 후에 질문을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남승석: 청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도 나이를 먹고 기성세대가 되고 나니 지금의 청년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요. 제가 나서서 청년은 이렇다고 설명하기보다 실제 청년들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관객: 오묘한 느낌을 가지고 영화를 봐서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 청년이라고 하면 불확실함을 가지고 불확실한 삶을 유지하면서도 ‘이게 맞나’ 싶은 느낌으로 살아가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저도 친구들이 다 가니까 대학교에 갔는데 살다 보니 ‘이게 맞나’ 싶으면서도 뭐라도 해보자 싶어서 운동을 시작했고 또 ‘이게 맞나’ 싶어서 다른 여러 가지 일을 해보고. 저도 무순과 많이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감독님은 이 영화를 만드시면서 청년이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남승석: 청년이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아름다우면서 아픈 순간인 것 같아요. 저는 제가 계속 청년일 줄 알았는데요, 사실 지금의 청년에 대해서 저는 아직도 이해를 잘 못하고 있습니다. 이해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이 영화를 만들면서 세대마다 너무나 다른 생각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지금의 상황에서 청년들의 아름답고 아픈 순간을 어떻게 형상화할 수 있을지 고민했구요. 권무순 씨와 소통하면서 저는 제가 젊었을 때 무순만큼 했을까, 무순처럼 IMF에 가족이 해체되는 순간에 당장 나의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돌아보게 됐어요.

아름다운 사람들, 순수한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런 사람들이 무참히 파괴될 가능성이 많잖아요. 아름다운 사람들의 초상화 같은 걸 만들고 싶었어요. 전작도 그런 영화였고요.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는, 청년 무순에게 조금이라도 선물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관객: 요즘 청년이 어떻게 살고 생각하는지 알게 되어서 좋은 영화였습니다.

관객: 무순과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무순과 태원이 뛸 때 가끔 인물이 아닌 주변 경관을 비추는데 그 의도도 궁금합니다.

남승석: 권무순 씨는 저희 동네 서브웨이에서 일하시던 분이었어요. 일하실 때 늘 유쾌하게 사람들과 이야기하더라구요. 그런데 그렇게 밝고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사실 어떨 때는 불안정할 수도 있거든요. 어쨌든 그분은 몇 달이 지나도 같은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멍이 들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농담으로 “어, 권투하시나요?” 물었더니 “어떻게 아셨어요? 권투합니다.”라고 대답하시더라구요. 이분에게 뭔가 특이한 게 있는 것 같다, 5~6개월 정도 지속적으로 서브웨이를 먹으면서 관찰하다가 조심스럽게 얘기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은데 찍을 생각이 있냐고. 그렇게 찍게 됐고요.

제가 말씀드렸어요. 이건 개인적으로 만드는 독립영화고 돈 벌려고 만드는 영화도 아니다, 그런데 이런 영화를 만들 때조차도 주위에서 ‘널 이용하려는 거다’, ‘널 가지고 돈을 벌려는 거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건데 그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느냐 물었죠. 그랬더니 자기는 재미없는 드라마도 끝까지 볼 수 있다, 재미있든 없든 끝까지 견디는 걸 잘한다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는데 이 분은 흔들리지 않겠구나, 했어요. 이 영화는 여러 영화제에 다녔고 내년엔 개봉도 합니다. 보통 이러면 흔들리거든요. 그런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거예요. 영화를 만들면서 저보다 훌륭한 부분을 많이 봤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아름다운 청년들의 초상화를 만들면서도 그 청년이 들어간 시대의 풍경 또한 포착하고 싶었습니다. 권무순과 박태원이 달리는 위치를 집어주면 저희가 자동차를 타고 따라가서 찍고 빠지는 식으로 촬영을 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농촌의 가옥과 버려진 물품, 달리는 이들의 자취가 포착됐습니다.

관객: 집수리를 하면서 벽을 허물고 다시 벽을 세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건 무슨 의도였는지 궁금합니다.

남승석: 잘 아시다시피 다큐멘터리는 시작하긴 쉬운데 마무리 짓는 게 어렵습니다. 그런데 마무리를 지을 즈음, 무순이 옥탑방에서 이사를 가야 하는데 집을 부수고 가야 한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어, 잘됐다! 집 부수는 거 찍고 싶었는데!’ 했죠. 그런데 조금 있으니 그 서브웨이 건물도 부순다는 거예요. 저는 무순의 집과 일터가 무너지는 모습을 촬영하고 싶었거든요.

무순이 울지 않고 강한 모습을 보이지만 사실 계속 지하실과 옥탑방을 전전하고 친구 집에 얹혀살며 견뎌왔거든요. 집이 무너지는 걸 찍지만, 어떻게 보면 그게 인생의 새로운 시작점일 수 있다는 걸 무순에게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무순이 새로운 삶에서는 좀 더 안정적이고, 또 보금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게 편집했어요.

관객: 감독님도 청년기를 거쳐 기성세대가 된 것 같다고 아까 말씀하셨는데요, 그래서 감독님의 청년 시절이 궁금합니다.

남승석: 겁이 없고 지나치게 자신만만하다 보니 대책 없이 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반성하고 부모님과의 화해를 위해 좀 더 노력하고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는데요. 제가 청년기에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몰랐어요.

그리고 촬영할 땐 걷고 뛰느라 너무 힘들었는데 가끔씩 무순과 태원이 뛰어나가던 그 순간을 생각하면 아름다움이라는 건 순간적이고 또 영화적이다, 이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야말로 영화와 뉴미디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