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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부산평화영화제/영화제 사진 및 GV

11.15. 공식경쟁 ⑤ 〈비밀의 정원〉 GV

 

 

 

 

 

 

 

일시: 2020년 11월 15일 (일) 10시 50분

진행: 김정화(부산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게스트: 박선주(〈비밀의 정원〉 연출)

 

진행자: 먼저 감독님의 연출 의도 짧게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선주: 성폭행 관련 영화들을 보면 굉장히 자극적이고 사건과 범죄자 중심 영화가 많은데요. 사건 이후 일상을 살아가는 피해자의 삶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도울 수 있을지를 우리가 생각해보았으면 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진행자: 성범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정원이가 남편에게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라고 물었듯, 피해자도 연루되었을지 모른다는 망상입니다. 또 하나는 성폭력 피해자는 더렵혀졌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이고요.

관객: 성폭력에 관한 영화들이 항상 자극적이기만 한 게 많이 아쉬웠는데 이번 영화는 피해자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 친누나도 성폭력은 아니지만 데이트 폭력을 당한 적이 있어요. 당시에 전 많이 어리기도 했고 또 많이 돕지 못했고, 지금 돌이켜보면 부모님께서도 잘 케어해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여자가 아니고 그런 폭력을 실제로 당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런 문제와 상황을 심층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박선주: 저도 영화를 찍는 내내 가족들이 어떻게 하는 게 정원이를 위하는 것일지 많이 고민했는데 너무 어렵더라구요. 아무리 정원이를 위해준다고 안타까운 마음에 말을 하더라도 정원이의 입장에서는 피해자로 낙인찍히는 듯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고, 나는 항상 아파야 되는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는 그 사람의 곁을 지키면서 함께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비밀의 정원〉에서는 상우에게 그런 기다림이 부족했거든요. 기다려줬다면 정원이도 덜 아팠을 텐데. 그런데 상우 입장에서도 내 가족에게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시간을 겪었을 거예요. 상우의 행동도 일부러 저렇게 설정한 거거든요. 저게 굉장히 현실적인 반응이지 않을까. 백 퍼센트 정원이를 위한 선택을 한다는 게 오히려 판타지일 거란 생각이 들었고.

관객: 가족으로서 돕지 못한 마음도 있는데 이외에도 상처가 많은 사람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일련의 사건으로만 치부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 미안한 것 같아요.

박선주: 저도 영화를 통해서, 가해자는 전혀 미안해하지 않을 것 같은데 왜 가족들이 이렇게 미안해하고 서로의 상처를 돌보지 못한 미숙함으로 힘들어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상우 또한 엔딩 이후의 삶에서 아내 몰래 사건 기록을 들춰보고 섣불리 비밀을 말해달라고 했던 걸 후회하고 상처와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하며 작업했습니다.

진행자: 저는 그래서 사실 정원이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정원이가 말했다시피 자신의 잘못도 아니었고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상하게 도둑질을 당했을 땐 수치심을 느끼지 않지만 성과 관련된 범죄에 대해서는 피해자든 피해자 가족이든 함께 수치심을 느껴요. 우리 모두가 이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미안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선주: 그런데 그 장면은 꼭 필요한 장면이었어요. 우리 사회가 정원이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게끔 만들거든요.

 

진행자: 정원이의 목 상처에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계속 이사를 가려고 옛 것을 버리고 짐을 싸는 과정과 집으로 돌아갈 때 터널을 지나는 장면은 감독님의 의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관객: 그리고 사실 저는 〈비밀의 정원〉보다 영어 제목인 〈Way Back Home〉이 더 좋았어요.

박선주: 우선 다른 한국 영화 중에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작품이 있고, 오프닝에 제목이 뜨자마자 모든 관객이 영화 전체 내용을 짐작하게 될 것 같아서 제목을 〈비밀의 정원〉으로 교체했습니다.

이사를 가는 장면은 초고를 쓴 뒤에 영화 상황을 잘 표현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해서 넣었습니다. 두 인물이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아 경찰서에 다녀오면서 균열이 발생하는데, 이와 정반대의 상황을 보여주면서 심리묘사를 하고 싶었어요. 이사를 가고 함께 짐을 싸는 건 미래를 위한 행동이잖아요. 미래의 행복한 날을 위한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균열이 발생하고, 거기서 아이러니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터널은 마찬가지로 정원이가 터널에서 빠져나왔으면 좋겠다, 누구와도 나누지 않고 혼자 간직했던 상처를 이제는 나누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에 집으로 향할 때, 터널 밖을 나가니 새벽이고 또 해가 뜨고. 앞으로 정원이가 다른 삶을 살겠구나 하는 표현이었구요.

흉터가 있는 장면은 상처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기보다 그걸 대하는 정원이의 태도가 작품 전체에서의 정원이 캐릭터의 변화 양상이에요. 흉터를 가리는 행위를 통해서 정원이가 상우에게 상처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관객: 단편에서 장편으로 전환되면서 달라진 부분이 궁금합니다.

박선주: 10년 전 범인이 붙잡혔다는 내용은 같지만 단편인 〈미열〉은 하루 반나절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였어요. 〈비밀의 정원〉과의 가장 큰 차이는, 〈미열〉이 부부 간의 균열을 주로 다루었다면 〈비밀의 정원〉은 좀 더 피해자인 정원이 한 명에 집중하여 가족 스토리로 전개한 영화라는 점입니다. 가족을 중심으로 정원이의 상처가 회복되기 힘들었던 이유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진행자: 정원이가 사건 이후에 고향에서 살지 못하잖아요. 피해자가 자신의 일상으로부터 분리당하는 경험을 하는 거죠. 돌아가는 데 걸린 시간도 굉장히 길었구요. 유배 가는 것처럼 이모 집으로 가게 되고. 그 마을이 서낭당까지 있는, 굉장히 고전적인 마을이잖아요. 아마도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주변의 반응이나 대응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박선주: 그런 의도로 서낭당이 있는 곳을 선정한 건 아니었구요. 일상 공간에서 쉽게 갈 수 있는 숲, 큰 나무가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바다가 바로 앞에 있는 집을 섭외하고 그 주변으로 서낭당 같은 공간을 물색했는데 몇 분 거리에 있더라구요. 보는 순간 여기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관객: 작중에서 비가 많이 오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박선주: 예기치 못한 상황에 내리는 비라는 설정이었는데요. 범인이 붙잡혔다는 연락처럼 원치 않은 순간에 불쑥 찾아오는 기억들을 전반적인 맥락에서 은유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