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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부산평화영화제/영화제 사진 및 GV

11.14. 공식경쟁 ④ 〈해협〉 GV

 

 

 

 

 

 

일시: 2020년 11월 14일 (토) 19시

진행: 박인아(시민 모더레이터)

게스트: 오민욱(〈해협〉 연출)

 

진행자: 감독님께서는 처음에 어떻게 이 영화를 만들게 되셨는지, 간단히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민욱: 2015년까지 만들고 있던 영화들을 마무리하고 새 작업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 과정에서 이전까지 찍은 작품들을 생각해보게 됐어요. 〈범전〉이라는 작품은 하야리야 캠프 근처 기지촌에 관한 작품이었고, 〈적막의 경관〉은 한국전쟁 당시의 양민학살에 관한 작품이었고, 〈재〉에도 하야리야 캠프 같은 부산의 도시 풍경들이 또 나오고 〈상〉이라는 작품도 이 근처의 부산근대역사관에 관련된 이야기예요. 살펴보니 전쟁의 결과로 얻어진 건축물, 풍경, 이야기, 공간을 제가 찍었더라구요. 그런 결과를 만든 원인인 전쟁에 본격적으로 초점을 맞춘 작품을 찍어보고 싶어서 2015년 연말부터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2016년에 〈범전〉이 대만의 두 곳 정도의 영화제에서 상영됐어요. 5월에 타이페이, 11월에 타이난에 갔어요. 타이난의 영화제에서 한국어 통역을 맡았던 샤오카이츠라는 친구를 알게 되어 〈해협〉을 같이 찍게 되었습니다.

 

진행자: 영화에서는 한중일 3국의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여러 제례를 보여줍니다. 한국의 제례에서는 부산 남구의 UN공원이 등장해서 다들 반가운 마음도 드셨을 것 같습니다. 각국의 제례들을 보고 있으니 감독님께서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왜 교토의 기온마쯔리를 고르셨는지 궁금했습니다. 저는 사실 전쟁과 관련된 의례라는 점에서 전범을 모시는 야스쿠니신사의 제례가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교토 기온마쯔리를 보여주시더라구요.

오민욱: 기온마쯔리는 제가 전혀 모르고 있었던 제례였습니다. 2016년 7월에 교토로 휴가를 갔다가 처음 보게 되었어요. 굉장히 많은 인파가 어디론가 가시더라구요. 그 인파에 섞여서 걸어갔었는데 그때 봤던 장면들,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그게 뭔지도 모르고 어떤 영화에 어떻게 표현할지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 인파가 파도나 해류처럼 흘러가는 느낌을 받았고, 카메라로 한번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어요.

제가 영화 찍을 때 인과 같은 걸 생각하지 않고 어떤 모습과 풍경을 찍고 싶어지면 그때 어떤 형식의 영화로 주변부에 존재하는 것들과 연결해서 만들 것인가 그렇게 보통 작업을 하거든요. 마찬가지로 기온마쯔리의 인파에 매료됐던 거죠. 그걸 생각하고 있다가 4개월 뒤에 샤오카이츠를 만나서 작업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고요.

다시 1년을 기다려서 교토에 가서 기온마쯔리 풍경을 찍었죠. 찍고 나서, 제 눈이 아닌 카메라에 담긴 것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게 천 년 넘게 행해진 의식이며 그 기원은 역병을 쫓아내기 위함인데, 그걸 위해서 원령들을 불러내서 무언가를 비는 거잖아요. 그 원령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특정할 수 없잖아요. 그 원령 안에는 이런 죽음, 저런 죽음이 있을 건데. 저렇게 불려나온 원령 중에서는 일본이 일으켰던 전쟁에 희생된 분들, 혹은 가해자들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 거죠. 그래서 기온마쯔리가 저에겐 그런 방식으로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 한국이나 대만을 촬영하다가, 대만 중원절도 우연히 알게 됐고요. 중원절도 기온마쯔리처럼 또 1년을 기다려서 다음에 다시 가서 촬영했죠.

진행자: 한국의 제례 이야기를 질문 드리자면, ‘백중’을 이야기하면서 한 사찰의 참배객들이 화면에 가득 등장하고 이때 산을 오르거나 절을 하는 군중들을 비추는 장면이 슬로우 모션으로 진행되는데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기괴하다고 느꼈습니다. 이 장면을 왜 이렇게 느리게 보여주는 건지, 혹시 의도한 바가 있으시다면 설명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오민욱: 한국의 백중 기간이 대만의 중원절 기간이라 그때 전 대만에 있었고, 제작팀에서 PD님과 조감독님이 촬영을 맡아서 해주셨어요. 저희가 그 당시에는 고속촬영 기법으로 촬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장면에 대해서 음악감독님이 주신 의견도 있었거든요. 불이 만들어 낸, 육지에서의 형상들인데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이나 불이 만든 형상의 일렁임이 수면 아래의 액체적인 느낌으로 움직인다는 의견을 주셨어요. 그런 방식으로 음악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하셔서, 저도 그 부분에서는 일반 속도로 찍힌 장면을 다 빼버리고 고속촬영으로 찍힌 장면만 가지고 그 시퀀스를 편집했습니다.

관객: 백중과 중원절 이야기를 하면서 영혼을 불러온다고 내레이션이 나온 다음에 갑자기 해운대 북극곰 수영대회 장면으로 전환되거든요. 제가 느끼기에는 그 장면에서 영혼들이 실체화된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 의도로 연출을 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오민욱: 그 장면을 찍은 이유는 그게 아니었어요. 찍을 때는 그 연결을 염두에 두지 않았구요, 집단적인 풍경을 찍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왜 집단으로 모여서 제의든 기념의식이든 하는 걸까? 그동안 촬영된 북극곰 수영대회 영상을 보는데, 이 사람들이 찬 바다에 모여서 들어가는 이유가 뭔지 저는 모르겠는 거예요. 가족의 건강이나 시험 합격처럼 여러 이유들이 있겠죠. 뭔가 결핍되어 있기에 계속 기원을 하는 거잖아요. 기저로 내려가면 어떤 형태든 불안이 존재할 것 같단 생각으로 집단적인 풍경을 쫓아가다가, 북극곰 수영대회까지 찍게 된 거죠.

관객: 마지막에 천황제 반대 시위의 모습을 보여주신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오민욱: 동아시아 전쟁의 역사에서 히로히토가 일으킨 전쟁이 차지한 부분이 꽤 큽니다. 한국전쟁이나 국공내전을 개별적인 전쟁으로 보면 연결성이 없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태평양 전쟁과 관련되어 있어요. 바다나 해협은 육지처럼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잖아요. 계속 흐르고 흘러서 섞이죠. 이 세 전쟁 혹은 그보다 많은 전쟁이 수면 아래에 다 섞여 있지 않은가 생각했습니다. 단순하게는 그렇고, ‘불안’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단일하게 무언가라고 정의내리기 힘든 부분들이 있습니다. 다 섞여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요.

전쟁과 평화 두 가지를 생각해보면, 전쟁이 끝나면 평화가 찾아오나? 평화가 끝나면 전쟁이 찾아오나? 그렇게 생각하면 반드시 그 두 개가 같이 있어야 하나가 되는 거잖아요. 평화라는 것은 그냥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 예정된 상태라는 거잖아요. 저는 현재 동아시아의 국면도 그렇단 생각을 많이 했어요. 단순히 물리적인 전투가 벌어지지 않는 상황이지, 이것을 우리가 순수한 ‘평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생각들이 들었고요.

일본의 천황제는 어떻게 보면 아시아가 극복하지 못한 것이죠. 윤리적으로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되풀이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를 찍을 당시, 1년 뒤에 일본이 헤이세이에서 레이와 시대로 바뀐다는 얘기를 듣게 됐어요. 그래서 찍으러 갔고 시대가 바뀌는 풍경을 보면서, 저는 2019년 4월 30일에서 5월 1일로 전환되는 느낌보다는 천황제의 굴레에 갇혀 나아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 같단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고 나니 히로히토 무덤이 보고 싶더라구요. 그 사람 때문에 집을 잃은 이들은 떠돌다가 죽어서 제의에 불려나와 현재의 안녕을 기원하는 빌미가 되었는데 히로히토는 묻혀 있는 거죠. 실제로 찾아가 보니 숲속에 성스럽게 묻혀 있었고요. 이상했었죠.

관객: 내레이션 중에 지진을 많이 언급하던데 그게 어떤 의미인가요?

오민욱: 영화 마지막에서도 그 내레이션을 쓸 때 지진이 났었고요. 일본은 지진이 잦은 나라라고 알고 있지만 대만에 대해선 생각을 못했었거든요. 내레이션 안에서 지진이라는 사건이 선택된 이유는 이 영화가 불안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진행자: 영화 중반부에는 타이난의 풍경들을 사진으로 연속해서 보여주는 장면이 있고, 후반부에는 화자의 어머니가 계신 태국의 부리람의 풍경들을 또 연속해서 보여줍니다. 영화에서는 한 컷 한 컷 제작자의 의도가 들어가지 않은 부분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대구되는 이 두 이미지묶음에 어떤 연출의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민욱: 부리람에 갈지 말지 고민을 하다 안 가는 걸로 결정했어요. 부리람에 가서 촬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샤오 어머니께서 찍은 필름을 받아 인화해서 넣은 장면이었구요.

사진에 관한 이야기는 이 영화의 전체적인 형식과도 맞닿아 있을 거 같습니다. 진먼 섬에 갔을 때 최병우 기자 비석을 발견하고 한국에서 최병우 기자 평전을 구해 읽었어요. 최병우 기자가 죽기 전에 어머니와 딸과 나눴던 편지들이 그 책에 수록되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평전에서는 그림엽서 앞면의 그림만 볼 수 있고 뒷면에 있는 글은 볼 수 없었어요. 그게 흥미롭고 또 궁금하더라구요. 이 영화를 전체적으로 이렇게 편집한 이유는 그렇게 그림엽서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관객: 진먼 섬을 찾아보니 중국에서는 2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타이완에서는 200km 넘게 떨어져 있더라구요. 이렇게 된 경위를 감독님께서 혹시 알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오민욱: 저도 그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1930~40년대 내전이 치러지다 태평양 전쟁 발발로 잠시 힘을 합쳤다가, 다시 전투를 치르기 시작하는데 결국 마오쩌둥이 승리하기 시작한 거죠. 장제스가 난징을 지나 퇴각하다 진먼을 최후 전선으로 만든 거예요. 미국은 마찬가지로 그 섬을 항공모함처럼 활용할 계획이었고. 그래서 진먼 섬은 지금 한국의 백령도처럼 사용되어, 그곳에서 엄청 싸운 거죠.

진행자: 오늘은 〈해협〉의 오민욱 감독님과 함께 이야기 나눠보았습니다. 제가 최근에 보려고 골라놓은 〈글로벌 냉전과 동아시아〉라는 책표지의 그림이 생각나네요. 멀리서 보면 비둘기 모양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탱크, 총, 미사일 같은 군수품을 빼곡히 모아 비둘기 형상을 만들어 놓은 그림이 표지에 그려져 있습니다. 오늘 영화에서 감독님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런 그림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