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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부산평화영화제/영화제 사진 및 GV

11.15. 공식경쟁 ⑧ 〈언더그라운드〉 GV

 

 

 

 

 

 

일시: 2020년 11월 15일 (일) 19시

진행: 진세영(시민 모더레이터)

게스트: 김정근(〈언더그라운드〉 연출)

진행자: 〈언더그라운드〉 제작을 시작하신 계기를 여쭙고 싶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부산공고에서 시작하는데요, 왜 지하철이고 공고인지 궁금합니다.

김정근: 2015년에 부산평화영화제에서 대상을 탄 〈그림자들의 섬〉을 제작하고 주변에서 그런 얘길 들었어요. 어떤 분께서 〈그림자들의 섬〉처럼 푸티지와 인터뷰만으로 영화를 만드는 방식을 자신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는 얘기였어요. 저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어서 그 방법을 취했는데 푸티지, 인터뷰, 자료를 편취해서 영화를 구성했다는 오해가 있으시더라구요. 노동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꼭 그래야 하는가, 그런 문제 제기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래서 다음 영화도 노동을 주제로 할 것인데 이번에는 어떤 방식을 취할까 생각해봤어요.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만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컸죠. 〈언더그라운드〉의 촬영, 편집 원칙은 그렇게 처음부터 고민하고 들어갔어요. 왕빙의 〈철서구〉나 프레데릭 와이즈만의 영화 들을 레퍼런스로 하고, 다이렉트 시네마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공부하기도 했어요.

왜 노동이고 왜 지하철이냐 했을 때는, 〈그림자들의 섬〉을 만들고 나서도 인간과 기계가 싸우는 방식, 그 테마가 저에게는 여전히 흥미롭고 재밌었어요. 그게 기차로 이어진 것 같아요. 철도를 타고 창문을 보면 그게 마치 영화의 프레임 같기도 하잖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기차의 느낌과 정서가 되게 좋았어요. 만들고 조립하는 노동과 그 사람들을 좋아했고요. 기차라는 기계적 성질 이외에 그걸 만들고 수리하고 공간을 청소하는 사람들까지 포괄하는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부산공고는, 2018년 4월쯤부터 공고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공고 출신이거든요. 그 시기에 구의역 김군, 조금 더 앞서서는 제주 민호군이라고 프레스에 끼여 사망한 일이 있었어요. 그런 얘길 들으면서 제가 공고를 다니던 시절이 복기되더라구요.

〈그림자들의 섬〉은 일종의 정규직의 투쟁에 관한, 그들이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조각났는지에 대한 영화라면 〈언더그라운드〉는 비정규직과 그들의 구조가 현장 안에서 작동하는가의 얘기예요. 그리고 〈언더그라운드〉는 사이클이 영화의 핵심이었어요. 일하는 분들이 기차를 분해, 조립, 청소하는 게 24시간 굴러가잖아요. 그것과 함께 노동이라는 구조에 들어오는 방식, 정규직이 어떻게 비정규직이 되고 또 무인화 과정을 통해 없어지는지, 그 사이클을 보여주는 시작은 노동시장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하는 게 아귀가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 찍고 있는 공고의 이야기를 〈언더그라운드〉에 잠시 빌려왔습니다.

관객: 기관사분이 나오셔서 직업이 대체되는 과정이 천천히 친절하게 진행되면 좋겠는데 아프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감독님은 이 영화를 만드시면서 삶의 장면 중 하나로서의 노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촬영 전후의 노동에 대한 생각과 혹시 변화가 있으셨다면 궁금합니다.

김정근: 자신이 몰두하는 주제에 매몰되어서 신성시하는 측면이 저도 분명 있었어요. 지금도 없잖아 있죠. 하지만 동시에, 노동에 대해서 때론 그런 생각도 해요. 하찮구나. 하찮다는 생각 많이 하거든요. 이 하찮음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하찮음이에요. 영화를 통해서, 일하는 일상의 모습보다는 노동 공간 내에서의 계급 문제가 대두되면 좋겠더라구요.

너무 직접적이어서 안 넣은 씬이 있어요. 청소노동자의 휴게 공간은 굉장히 협소해서 모로 누워 자야 하는데 기관사 휴게 공간에는 안마의자가 있어요. 그런데 그걸 비교하면 너무 그분들을 욕하는 것 같아서 못 넣겠더라구요.

어쨌거나 노동에 대한 처우가 너무 다른 거예요. 저는 막연히, 비정규직 투쟁은 정규직화라는 어떤 선언적이고 목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건 정말 다른 문제더라구요. 청소노동자의 육체노동은 대우를 받지 못하지만, 고학력에 노력했다는 이유만으로 안마의자가 주어지는 괴상한 장면. 그걸 보면서 제 생각이 많이 바뀌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적절한 대우가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 우리는 노동이 소멸되는 과정을 겪고 있고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소비가 생산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순간은 반드시 올 것이고, 그러면 노동자나 시민에게 기본소득을 주고 인간이 다함께 노동에서 좀 해방되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는데 그게 참 쉽겠냐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튼 저도 비슷한 고민이 많아요. 영화 만들면서 노동에 대한 생각이 이렇게 좀 분열된 것 같아요.

 

진행자: 전작인 〈그림자들의 섬〉과는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인터뷰를 최소화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물에 캡션을 달고 심층적인 인터뷰를 진행하기보다 좋아하는 음악을 묻는 방식도 신선했습니다. 또 기관사 인터뷰에서는 대답만 들리는데 청소노동자 인터뷰에서는 감독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차이가 있었는데요, 이유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김정근: 〈그림자들의 섬〉은 현장에 최대한 밀착해서 같이 먹고 자며 그분들의 마음을 얻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그 과정이 사실 영화를 뚫고 나왔죠. 그리고 그분들은 해고 상태였어요.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며 평범한 노동자가 어떻게 해고자나 투사가 되었는지 증명해야 했기 때문에 그 과정과 정보를 보여주는 게 중요했던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언더그라운드〉는 그들의 일하는 공간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어요. 자신이 하는 일, 사용하는 도구를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노동 계층의 취향과 기호, 그들의 생각, 현장에서의 문제가 잘 표현되는 방식을 취하려다 보니 지시나 자막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전 노동 구조가 굴러가는 방식을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지 노동자들과 저의 관계를 조명하고 싶진 않았어요.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노동 구조와 사이클에 대해 자신의 입장과 관점에서 생각해보길 바랐고요. 그래서 멀찌감치 촬영을 했었어요.

그런데 청소노동자분들이 그걸 뚫고 나오세요. “니 이거 뭐 하러 찍노?” 하시면서 입에 수박도 넣어주시고요. 제가 멀리서 촬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저를 앞에 둔 노동자들까지 그렇게 생각할 순 없는 거잖아요. 제가 통제할 수도 없고. 그래서 그런 장면들이 튀어나왔던 것 같아요. 호불호가 좀 갈리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감독과 당사자의 잘 이루어진 소통으로 봐주시는 분들이 있는 반면, 영화와 톤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더라구요.

 

관객: 비정규직의 삶을 조명한 이유가 그저 이런 삶들도 있다고 보여주기 위함인지 혹은 이를 통해 사회와 노동 구조에 대한 관객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함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정근: 핸드폰을 보면서 쉬는 시간을 충분히 누리는 정규직 노동자와 그런 계급의 문턱을 넘지 못해서 훨씬 열악한 처우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그게 사실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잖아요. 그걸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게 이 영화라고 생각해요. 부당하다고 느낀다면 바꾸기 위한 논쟁을 이어나갔으면 좋겠고, 그렇지 않다고 느낀다면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저는 전자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에요. 서울의 다른 영화제에서 관객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열심히 노력해서 정규직이 되어 충분한 휴식을 누리는 건 공정한 게 맞지 않느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게 공정하다고 생각한다면, 물론 그럴 수 있어요. 반면 그 계급이 한평생 지속되는 방식, 오랫동안 일한 숙련된 노동자가 비정규직 저임금으로 계속 일하는 방식은 불공정하지 않을까요? 한국 사회는 시험 외에는 정의와 공정을 판단할 기준이 너무 없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시험을 통한 정의와 공정만이 너무 중시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되더라고요. 그런 걸 좀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잘 아시겠지만 비정규직이라는 표현도 97년 IMF 이후 2003, 4년쯤에 처음 나온 거예요. 그런데 이게 어느 순간 우리를 집어삼키는 이야기가 된 거죠. 없던 기준들이 생겨서 우리를 옥죄고 있는데 그걸 다시 되돌리거나 새롭게 상상하는 기회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영화 바깥에서 해봅니다.

 

관객: 졸업사진을 찍는 아이들 모습이 저희 기성세대에게 무언가 질문하는, 마음을 건드리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감독님이 던지는 질문에 체념했거나 포기한 어른들이 앞으로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구요. 그런데 감독님이 촬영하실 때 관리자로 보이는 분이 어떤 말씀을 하고 지나가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정근: “우리 직원들이랑 싸우지 마요!” 이러고 지나가셨어요. ‘우리 직원들’이라는 표현은 정규직분들입니다. 그분들도 자신들이 어떻게 비칠지 아시는 거예요. 정규직분들도 열차 안전을 위해 고난도의 기술을 사용하시죠. 그런데 그게 비정규직분들이 못하는 일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거든요. 비슷한 일을 같이 하시는 분도 많으세요. 같이 협조해서 작업하기도 하구요. 그럼에도 옷도 다르고 하는 일의 강도도 더러움의 정도도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비칠지 정규직 관리자분들이 충분히 아시는 거죠. 현장에서 모든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엄청 노력했고 얼굴을 익혔다고 생각했는데도 카메라를 들면 찍지 말라고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몇몇 관리자분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씀,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안다는 사실을 관객분들이 캐치하시면 좋겠더라구요.

 

관객: 부산교통공사로부터의 외압은 아직까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정근: 공사가 압력을 가할 수 없는 건 노동자들의 힘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부산교통공사 지하철 노조가 전국에서 손꼽는 튼튼한 노조거든요. 작년 부산독립영화제에서 상영할 때 공사 직원분이 보시고 가셨는데 다행히 어떤 반응도 없었어요. 그리고 촬영할 때도 모두 공문 처리를 진행해서 노동자분들에게도 협조를 구했고 불법적으로 촬영한 건 없어서 크게 문제 될 것 같진 않습니다.

관객: 노동자분들이 운동하시는 장면, 마지막에 기관사분이 지하철에 들어가시는 장면에 대한 감독님의 의도를 듣고 싶습니다.

김정근: 쉴 새 없이 돌아가던 공장에 잠깐 휴식이 오면서 노동자분들도 발야구를 하며 쉬는 장면이에요. 저도 공장 생활을 했었는데 사실 그건 흔한 장면이거든요. 그렇게 여가를 보내야만 다음 일을 이어가는 에너지가 생겨요. 노동자들의 휴식, 여가를 보여주고 싶었던 측면이 강했어요. 그걸 의외로 좋아하시는 분이 많으셔서 흥미로웠습니다.

엔딩은 처음 기획할 때부터 이렇게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85년에 지하철이 만들어졌는데요, 그때 뉴스의 첫 장면이 꽃 달린 전차에 대통령이 탑승하고 제복을 입은 기관사가 인사하는 장면이에요. 그 시대에 가장 중요했던 지하철, 그 지하철의 꽃은 기관사라고 저는 보거든요. 그 노동은 기관사만 할 수 있는 거였어요. 그런데 그 지하철 노동의 꽃이라는 사람이 이제는 지워지는 거죠. 빈자리를 기계가 대신하는 장면, 지하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사람들에게 먹먹하게 다가갔으면 했어요.

진행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간극, 일터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노동자가 탄압과 착취의 대상으로만 그려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좋았습니다. 기관사도 장시간 터널을 달리며 불안에 시달리고 걸어서 그 터널을 지나야 하는 비정규직도 마찬가지로 폐쇄감과 불안감을 느끼는 점에서, 둘 사이에는 간극도 있지만 접점도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접점에서 서로가 힘을 합치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