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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제8회 부산평화영화제 /★관객리뷰

[공식경쟁3] <그 날> '잃어버린 뿌리를 더듬는 서툰 시도'

잃어버린 뿌리를 더듬는 서툰 시도

부산평화영화제 공식경쟁 영화 <그 날> 리뷰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TV로 본 기억이 있다. 그곳엔 눈물 외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가슴에 휘몰아치는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수 없어 눈물로 쏟아냈을 테다. TV 너머, 그곳을 가득 메운 정서는 누구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하리라. 남북 이산가족의 눈물은 천륜마저 끊어버린 전쟁의 참혹함을 표상하며, 한국전쟁 이후 약 70년간 풀지 못한 남북문제의 상징이다.

이 같은 남북문제의 복잡다단함을 재현할 수 있을까. ‘남북문제의 다층적 구조를 담아낼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할까. 정수은 감독은 영화 <그날>을 통해, 그 희미한 재현의 실마리를 잡아채려 시도한다. 정 감독이 남북문제란 지난한 주제에 천착한 데는 그가 자신의 한쪽 뿌리의 죽음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 한쪽 뿌리는 이북 출신 반공포로였으며, 스스로 목숨을 버림으로써 세상을 등졌다. 영화 <그날>남북문제를 체현한 감독 자신의 가족사를 뿌리부터 다시 그리는 작업이다.

  정 감독이 자신의 가족사를 다시 그리는, 영화를 촬영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족의 뿌리를 찾으려 시도하는 이는, 뿌리를 잃은 자일 수밖에 없다. 정 감독은 자신의 가장 큰 뿌리, 아버지를 이른 나이에 잃었다. 그가 영화 속에서 나는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테다. 때문에 영화 <그날>의 제작은, 감독이 의지적 시도라기보다는 촬영해야만 하는 어떤 숙명이 작동한 듯하다. 정 감독이 엄마의 “()할아버지를 파헤치지 말라면서 감추고 싶어, 덮고 싶다는 말에도, 무릅쓴 어떤 숙명.


  영화는 정 감독의 외할아버지와 관계했던, 여러 친인척의 증언과 관련 자료로 구성됐다. 여기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외할머니에 관한 정 감독의 태도였다. 영화는 중반까지 외할아버지의 흔적을 찬찬히 더듬는다. 하지만 정 감독은 외할머니의 존재를 숨겼다. 사실 외할아버지의 가장 중요한 증언자는 외할머니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 감독은 나는 ()할머니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면서도 끝내 답은 듣지 않았다. 새카만 커피가 담긴 디켄더의 클로즈업은 외할아버지의 죽음에 새카맣게 타들어갔을 외할머니의 마음을 은유한 것에 다름 아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정 감독은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해보자고 가족을 설득한다. 정 감독에게 이산가족 상봉 신청은 “()할아버지와 닮은 다른 눈과의 만남을 위한 시도이다. 그것은 영원히 잃어버릴지도 모를, 제 뿌리의 일부를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하지만 정 감독의 엄마와 삼촌은 정 감독의 설득을 거부한다. 그들에게 이산가족 상봉은 공산국가와 민주국가가 만나는충돌적 순간이며, 가슴에 묻었던 아버지가 돌출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정 감독과 그의 엄마와 삼촌 사이에 놓인 것은 또 다른 휴전선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북한에 관한 인식의 간극은 좁혀질 수 있을까.


  그날.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그날을 마음 한켠에 품고 살아간다. 그날은, 기쁨이란 감정에만 접하지는 않는다. 그날은, 고요하길 바랐던 스스로의 인생을 요동치도록 만든 날들이다. 정 감독에게 그날은, 자신의 외할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내려놓기로 작정한 날일 테다. 그 참혹한 결심을 품어안을 시간도 없었던, 그날은 정 감독에게 크나큰 질문이었다. 영화 <그날>은 그날이 던진 질문에 대한, 서툴지만 진지한 대답이다.


관객리뷰단 김무엽(sakray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