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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13회 부산평화영화제/기록문

<피아노 프리즘> 특별공연

일시 : 2022. 10. 29. 토요일 7시

장소 : 모퉁이극장

참석자 : 오재형(<피아노 프리즘> 감독)

작성: 황예지

 

(상영 종료 후 피아노 연주곡 <양림동 소나타>가 시작되고 연주가 끝난 다음 오재형 감독이 말한다.)

 

오재형: 평소에는 ‘예술잡상인’이라고 소개하는데 오늘은 피아노랑 같이 있어서 피아니스트 오재형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절대 틀리거나 멈추지만 말자’ 이런 생각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생각도 해요. 틀려도 그게 나의 정체성이다. 제가 계속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저도 제가 너무 어색하고 신기한데 저를 바라봐주시는 분들도 제게 근사한 연주를 바라지도 않고요.

저는 미술이나 영화관 쪽에서 자주 공연을 하는데 이렇게 피아노 놓인 상황 자체가 특별하잖아요. 그래서 피아노를 치는 것만으로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생각보다 잘 치시네요. 이런 말을 해 주세요. 저는 그 말이 기분 나쁘지 않고 너무 좋아요. 이런 말들이 저에게는 너무 용기가 됩니다. 피아노 연주로는 욕심이 하나도 없고, 제 영상을 보여주는 더 생생한 방식이기 때문에 이런 식의 공연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영상과 함께 곡 <블라인드 필름>과 <화가의 숲>을 연달아 연주한다. 연주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가 시작된다.)

 

관객: 안녕하세요. 부산에서 활동하는 관객문화활동가입니다. 질문보다는 소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습니다.

 

오재형: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로망을 가진 분들이 많아요. 요즘 성인 취미 활동으로 유행이에요. 낮에 12시~1시 사이에 피아노 학원에 가면 직장인들이 점심 시간을 아껴서 학원에 와서 방이 꽉 차요. 요즘에는 흥미 위주로 피아노를 가르쳐 주시고, 잘한다고 격려해주시고, 곰 세 마리를 쳐도 그랜드 피아노로 쳐 준다. 그런 분 많잖아요. 곡 하나만을 제대로 쳐 보고 싶다. 불가능하지 않아요. 그 곡만 몇 개월 동안 치면 그럴싸하게 쳐 집니다. 노력한 만큼 성과가 있는 게 피아노예요. 선생님의 로망을 응원합니다.

 

관객: 영상과 피아노 공연이 함께 나올 때 <피아노 프리즘>이라는 제목이 이해되었어요. 하우스 공연에 갔던 관객들을 보며 정말 행운이겠다 싶었는데, 이 특별공연으로 그 행운을 제가 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피아노를 잘 치는 것보다도 감독님이 공연을 꾸리고 메시지를 만들어 나가는 게 관객에게 새로운 욕망을 주는 것 같아요. 올해 부산평화영화제 주제가 우크라이나 전쟁이라 막막한 영화들이 많았어요. <피아노 프리즘>는 울림이나 평화가 주는 힘이 느껴지는 영화였어요. 감사합니다.

 

오재형: ‘즐겁지 않은 투쟁은 잘못된 투쟁’이라는 구절을 어떤 책에서 봤어요. 저도 투쟁을 하면서 무섭게 느껴지고 연대 현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어색하기도 했어요. 계속 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없었어요. 내 문제와 밀접하지 않으면 멀어지기 마련인데요. 저는 피아노를 치는 게 즐겁거든요. 이런 방식의 투쟁이라면 오래 할 수 있겠다 싶어요. 다른 분들의 각기 다른 투쟁의 방식이 있겠지만 저 자신을 소심한 액티비스트라고 생각해요. 이것 또한 하나의 액티비스트라 생각합니다.

 

관객: 감독님은 저에게는 작가님이세요. 1년 365일 제 폰에는 이 그림이 있습니다. (휴대폰 액정을 감독님을 향해 보여 준다.)

 

오재형: 제가 강정마을에서 그렸던 그림이 배경화면에 있으시네요.

 

관객: 감독님은 저를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감독님을 조금 압니다. 우연히 검색하다 알게 되어 이 영화제에 왔습니다. 제가 살던 마을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오재형: 강정에서 올라오신 거군요.

 

관객: 네. 사실 보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마을에서 단편영화 <강정 오이군>을 상영했을 때를 기억합니다.

 

오재형: 제 영화의 시작점에 같이 계셨군요.

 

관객: 엄청 크게 웃었습니다. 저는 화가 오재형 작가님으로 알고 있었는데, 오재형 감독님으로 영화를 상영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만나고 싶어서 왔습니다. <피아노 프리즘> 보면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이렇게 힘을 빼고 만들 수 있을까 감동했습니다. 작가주의적인 주제나 의식을 멋있게 넣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인데, 오재형 감독님은 비유를 하자면 막춤을 막 췄는데 끝에 가서 욱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한 편의 난장을 본 것 같아 너무 행복했습니다. 저에게는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재형: 강정 마을에서 저를 영화 감독으로 만들어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강정 마을에서 제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예술의 형태에 대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의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이런 고등학생이 있어? 이런 어른이 있어? 예술적으로도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여전히 예술가들이 강정에 많이 살고 있습니다. 최근에 안 간지 오래 되었지만 이렇게 강정의 주민을 만나게 되니 반갑습니다. 마지막 곡 <마중>을 들려드리며 저는 물러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