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GV

제12회 부산평화영화제 GV 기록
<휴가>
일시 : 2021.10.30.(토)
장소: BNK부산은행 아트시네마 모퉁이극장
영화: <휴가>
기록: 이재영, 김지빈
참석자
모더레이터: 전은정 (예선 심사위원)
게스트: 이란희 감독(<휴가> 연출), 신운섭 프로듀서 겸 배우(‘우진’ 역)
진행자
영화 휴가의 이란희 감독님과 신운섭 배우 겸 프로듀서님과 함께 GV 시작하겠습니다.
관객 1
영화 잘 봤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남성들의 노동 투쟁 현장에 투쟁하는 모습만 보이고, 투쟁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열심히 밥을 하고 그런 부분이 많이 보이지 않잖아요.
이번 영화에서 주인공 재복은 누군가에게 계속 밥을 해주고 어떻게 보면 여성이 담당했던 그런 것들을 과감하게 남성 투쟁 현장에 소개를 해주셔서 인상 깊었거든요. 특별히 구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이란희 감독
공교롭게도 주인공 재복의 모티브가 된 분께서 실제로 농성장의 밥 담당이었어요. 농성장에서 밥을 하는 남자가 흥미롭다고 생각했고 또, 공교롭게도 그분께서 부인이 없으셔서 집에서도 가사 노동을 다 하시는 분이었어요. 그분을 모티브로 하다 보니 좋은 점은 남성분이 주인공인데, 이 사람이 가족들과 만났을 때 전형적인 가장으로서의 아빠 역할뿐 아니라 엄마의 모습도 함께 보여줄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만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부와 모를 동시에 대표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진행자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영화가 이전에 단편영화를 제작했더라고요. 그 부분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란희 감독
(휴가) 이전에 찍었던 단편영화가 ‘천막’이에요. ‘천막’은 제가 해고노동자의 이야기로 장편 시나리오를 쓰려고 취재를 하러 갔었는데 취재에 답하시는 분께서 말씀이 짧아서 이야기가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할까 하다 단편 영화부터 찍어볼까 해서 네 편의 단편영화를 그분들 이야기로 직접 출연하셔서 찍었어요. 마지막 단편영화 같은 경우 나름 규모를 갖춰서 잘 찍었는데 그게 ‘천막’이고 ‘휴가’에 보시면 첫 번째 시퀀스가 농성장에서 긴 농성이 패소로 끝나니까 자기들끼리 투덕거리고 그런 장면이 있잖아요. 그것이 ‘천막’의 일들이 그대로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진행자
신운섭 배우님이 제작에도 참여하셨잖아요. 영화의 제작과정을 잠깐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신운섭 배우
첫 장편이고, 그동안 작업을 쭉 같이했었는데, 저는 전문적으로 프로듀서 역할을 했다기보다 (이란희 감독과) 특수 관계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저를 쓴 거죠. 저희는 비교적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운이 좋아서 제작 지원도 받을 수 있었고, 사실 이 시나리오 전에 다른 시나리오가 있었는데요. 원래는 그 시나리오로 작업을 하려고 하다가, 도저히 (제작비로는) 규모가 안된다. 이런 사연도 있었고 그러면서 시나리오를 바꾸게 되었던 거고요. 무엇보다 제작 과정 에서 돈이 많으면 돈으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사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더라고요. 지역사회에서 그 지역에 계신 분들하고 잘 지내느냐 그게 독립영화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시민단체나 지역 시민 네트워크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저희는 인천에서 20년간 살다 보니까 쌓아왔던 이웃들이 있잖아요. 문제가 있으면 동네에 가는 곳이 있어요. 예를 들어 단골 술집에 가서 앉아있으면 동네 사람들이 많이 와요. 그럼 요새 이게 안 풀리네 하면 그건 어디서 하면 돼, 누구누구한테 가면 돼, 이렇게 연결해서 하고요. ‘휴가’ 같은 경우에는 장소가 여러 곳이 나오잖아요. 그러면 (단골집을) 가서 이게 안 되네요 하니까 목공소는 있어 저기 술집 있어 이렇게 해서 동네 이웃분들이 하나하나 연결해줘서 작업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진행자
시나리오를 만드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나요?
이란희 감독
제가 해고노동자 이야기로 시나리오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2012년 9월 15일이었거든요. 그때 저희가 사는 동네에서 악기공장에서 해고된 분들이 밴드를 하는 것을 봤어요. 그분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요. 원래는 악기를 연주하시지 못하는 분들이 막상 악기 만드는 일을 못 하게 되자 악기 연주를 배워 투쟁을 알리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연주를 잘 못 하셨죠. 그래서 되게 웃겼죠. 네 명이 연주하다가 어디가 틀리면 갑자기 연주를 멈추고 틀린 사람을 째려보고 이런 방식의 공연을 하셨어요. 그래서 되게 웃기면서 슬프기도 해서 인상적이라고 생각을 했고요. 그리고 마지막에 쌍용자동차 노조에 연대 가야 한다고 하면서 공연을 끝내시더라고요.
그때부터 그분들 이야기로 시나리오를 쓰려고 취재하고 단편영화도 만들고 하다 보니까 결국 7년 정도 걸려서 시나리오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두 가지 문제가 그 영화를 찍을 수 없게 되었는데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제작비 문제가 있었고요. 그 시나리오 같은 경우는 영화를 찍으려면 4억 정도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또, 실화니까 실제 그 문제를 겪고 있는 분들 관점에서 불편하실 수도 있겠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 두 가지 문제 때문에 지금 보신 ‘휴가’가 만들어졌죠.
진행자
영화 자체가 지역주민들과의 협업 연결로 만들어진 영화네요. 여러모로 의미가 깊겠습니다.
관객 2
영화 잘 봤습니다. 이 영화를 제작하실 때 왜 해고를 당하셨는가 하는 부분이 없이 투쟁부터 시작하잖아요. 마지막 결말도 열린 결말인데 이 부분이 일부러 그런 의도를 넣은 건가요?
이란희 감독
마지막 질문부터 말씀드리면 열린 결말은 제가 계획한 건 아닌데 뭔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미흡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관객분이 저 사람이 농성장에서 농성을 지속하는 건가 아니면 도시락만 전달하고 집으로 가는 건가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제 의도는 농성을 다시 지속하는 거죠. 날짜 판도 넘기고 하잖아요. 다시 동료들에게 밥을 해주는 일을 하면서 끝나기 때문에 농성을 지속하는 것으로 잡고 엔딩을 만들었습니다.
첫 번째 말씀하신 해고의 이유는 영상을 시작할 때 암전 화면 속에서 연설을 통해서 어떻게 해고되었는지가 나오는데요. 그게 정보전달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해고됐는지를 조금 설명하면 영화가 가진 단아함이랄까요. (웃음) 그런 게 살짝 깨져서 투쟁과 관련된 정서는 조금 생략하자 이런 생각이 있었고요.
대신 한 번 보신 분들은 잘 모르실 수 있지만 여러 번 보신 관객분들은 아실 수 있게 첫 부분에 ‘미래 경영상의 다가올 위기’로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로 그분들이 패소하게 된 거죠. 그런데 (그런 방식의) 해고가 정당하다면 정당하지 않은 해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 상황들이 정말 어처구니없었고 실제로 취재했던 투쟁을 하셨던 분들도 그런 판결을 받으셨고요. 투쟁에 대한 정보는 이 영화에서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다 빼고 사적인 영역들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진행자
배우님들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저는 처음에 재복이 실제 인물인가 했어요. 조금 어눌하고 반 박자 느린 대사들? 신운섭 배우님 같은 경우는 물 흐르듯이 잘 흘러가는데요. 재복은 뭔가 그런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들이 어쩌면 현실성을 더 부여하는 것 같더라고요. 어느 순간 제가 거기에 빠져들어서 보고 있더라고요. 특별히 배우 디렉팅에 있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란희 감독
일단 사실 저는 배우를 해봐서 어떤 연출자들은 감정의 표현을 원할 때 10원어치만 더해주세요. 20원어치만 더해주세요. (웃음) 이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디렉팅할 때 감정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요. 예를 들어 냉장고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할 때는 ‘냉장고를 잘 닦으셔야 해요.’ 이렇게 이야기하고 ‘그런데 할 말은 해야 해요.’ 이렇게 자기가 손과 말과 몸을 통해서 하는 행동을 정확히 하면서 말 역시 정확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는 거로 그래서 말과 신체적인 행동들이 다 목표를 가지고 하는 방식입니다. 어떤 감정 때문에 나오는 방식이 아니라 목표를 가지고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으로 연기를 하게끔 하죠. 아마 배우들이 연기하고 나서 쾌감이 없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진행자
저는 영화에서 두 분(우진과 재복)이 에나멜 칠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거기서 좀 서툰 듯 보이는 재복이한테 지적하죠. 여러 가지 기술을 가진 노동자 역할인데 너무 잘하시는 거예요. 저분은 진짜 목공 일을 하시는 분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는데 가장 배우답게 연기하시는 분? 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신운섭 배우
그 일을 잘했다기보다는 극 중에서 우진이한테 주는 역할이 있잖아요. 우진은 작은 공방을 운영하는 기술자이고 이 장소에 익숙한 사람이죠.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우진의 역할이었던 것 같아요. 재복도 잘했을 거예요. 그런데 옆에서 딴생각한 거예요. 그러니까 “야, 좀 잘 칠해~” 이렇게 되었던 것 같고 저는 그 일에 익숙하고 효율적으로 잘하는 사람인 거죠.
관객 3
영화 잘 봤습니다. 감독님이랑 배우님 두 분께 물어보고 싶은데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는지, 또, 감독님과 혹은 배우들과 같이 촬영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란희 감독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휴가 마지막 날 일할 때, 일 다 끝나고 나서 재복이 자기가 썼던 도구들을 정리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고요. 원래 시나리오에는 자기가 그동안 만든 가구들이 쌓여있고 문 닫고 나가는 장면이었어요. 그런데 이게 계속 걸리는 거예요. 되게 이상하다. 생각해보니까 만약에 이렇게 나가면 이 사람이 성취를 중요시하는 인물처럼 보일 것 같은 거예요. 이게 노동을 통해 쌓인 돈이고..
그래서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을까 그 촬영을 앞두고 고민을 했었어요. 그때 제 눈에 숫돌이 보이더라고요. 나무 바닥 끈을 갈면 되겠다. 그리고 정리하면 되겠다. 그리고 정리하는 영화에서 노출되었던 도구를 다 정리하는 것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재복이가 해고 직전에 일을 어떤 식으로 대했던 사람인지 관객들이 이 장면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겠다. 그러면 참 단아하겠다는 (웃음) 생각이 들었고요. 바꿔서 찍었고 매우 만족스러웠어요.
그리고 배우들과의 작업에서 어려운 점은요. 저희가 총 10회차 촬영을 했는데 1회차 때는 거의 대사 없는, 재복이가 버스 타고, 선풍기 닦고, 이런 것들을 찍었고 2회차부터 본격적으로 찍었어요. 리허설 때 재복이의 말투를 나름대로 만들려고 만들었지만, 막상 촬영이 시작되니까 그 부분이 뭔가 되게 낯설고 어떻게 해야 할지 살짝 예민해졌던 순간이 있었고, 그래서 배우분들도 그날 촬영이 힘들었을 거예요. 어쨌든 그날 (말투가) 만들어졌고 그 이후의 촬영에서는 만들어진 말투로 계속 갔었거든요. 그날이 조금 기억에 남네요.
신운섭 배우
저는 제가 나오는 영화를 계속 보게 되잖아요. 제가 나온 장면 중에 참 인상 깊다기보다는 “쟤.. 참..” 이랬던 게 뭐가 있냐면 마지막에 재복이랑 헤어지잖아요.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친구랑 일하다가 헤어지는데요. 영화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진이랑 재복이랑 같이 밥 먹는 게 한 번도 없어요. 밥 한번 먹고 헤어질 수 있잖아요. “아~ 재수 없어” 보면서 참 정이 떨어진다. 요즘에 저도 그렇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도 우진이 같은 방식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작하는 입장에서 가슴 벅찼달까 그런 순간이 있어요. 영화 속에 재복이가 의자를 빨간 클램프로 조여주는 장면이 있어요. 그날 마지막 촬영이었는데 어두워지고 무슨 문제가 있었냐면 그걸 제가 달 줄을 모르는 거예요. 항상 저희 옆에 목공소 선생님이 계셨는데 하필 그때 그분이 잠깐 나가신 거예요. 근데 촬영하다 (클램프가) 딱 풀린 거죠. 근데 해결을 못 하는 거예요. 이때 누군가가 선생님께 전화하고 스피커폰으로 설명을 하는데 모든 스태프가 다 조립하려고 하는 거예요. 보통 미술팀이나 제작팀이 그런 문제를 해결하죠. 전부 다 달라붙어서 다 같이 이 작업을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이 참 이런 거지 작업하는 게 나름의 뿌듯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진행자
처음부터 정리하고 밥하고 저기 가서 정리하고 밥하고 마지막에 하나하나 자기가 사용했던 도구들을 깔끔하고 소중하게 제자리에 놓는 이 손짓이 너무 가슴에 와닿는 장면이었고요.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야기만 보자면, 딸들을 버리고 간 아버지 너무 싫습니다. 그런데도 재복이 나타나는 순간 아주 작은 것들이 해결되는데요. 재복이는 공장에 가서 어린 친구의 산재 문제나 딸의 예치금과 패딩점퍼 등 일상의 하나하나씩 소소한 거지만 해결을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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