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 제12회 부산평화영화제/기록문

<보라보라> GV

<보라보라> GV

2021.11.23

 

 
제12회 부산평화영화제 GV기록
<보라보라>
 

일시 : 2021.10.29.(금)

장소: BNK부산은행 아트시네마 모퉁이극장

영화: <보라보라>

기록: 박선재, 김지빈

참석자

모더레이터: 김희진 (예선 심사위원)

게스트: 김도준 감독 (<보라보라> 연출)

 

진행자

일단 먼저 <보라보라> 보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GV를 진행할 김희진이라고 합니다. 오늘 고맙게도 김도준 감독님이 이 자리에 와 주셨어요. 간단하게 김도준 감독님 인사말부터 들으면서 이 자리를 시작할까 합니다.

 

김도준 감독

일단 영화 봐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저 말고도 공동 연출자 두 분이 더 계세요. 김승화 감독님, 김미영 감독님이 계시는데 영화에서 언급된 것처럼 두 분이 원직복직이 못 되시고 행정 업무로 고속도로 가운데서 하는 위험한 일인데 배치가 되셔서 멀리서 일을 하시느라 못 오셨어요.

 

진행자

두 분이 이제 현재 영화 속에서 투쟁하셨던 톨게이트 노조원이시고요. 김도준 감독님은 노조원은 아니셨고, 따로 영화를 연출하셨는데요. 이 영화의 미덕 중 하나가 실제 현장에 있었던 분들이 기록만 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기록해내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어떤 변화를 관객들에게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 아닐까 싶은데요. 처음 영화를 기록하게 된 계기를 듣고 싶고요. 그것이 기록되는 분들이 카메라를 들고 스스로 기록에 참여하는 것이 시작부터 함께 한 것인지 별도로 출발한 것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김도준 감독

일단은 이 보라보라 프로젝트를 2019년 8월에 시작했는데요. 별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조국 장관 관련 집회가 열렸었는데 그곳을 기록하다가 (시작 되었고요.) 2008년 광우병 논란부터 시작해서 큰 촛불집회 있었는데 그것부터 조국 집회까지 저는 하나로 보였고 사실 촛불집회가 우리를 얼마나 성숙시킨 것인가 회의감을 느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광화문에서 행진하는 톨게이트 노동자분들을 봤고 동시에 기록하게 되었는데 그분들이 자유롭게 말하고,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토론을 하잖아요. 그런 모습이 감명 깊었고 그분들의 지성에서 희망을 발견한 것 같아요. 그 당시에.

 

그리고 촬영해야 하는데 처음 내려간 곳이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였는데 당시에 경찰들이 막고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영화 중반부터는 가능했지만, 초반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고 투쟁 도중에 일부 조원들이 캐노피라고 톨게이트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하셨는데 거기서 촬영할 수가 없었어요. 사실은 불법이었기 때문에 도로 위에 기중기를 타고 올라가시잖아요.

 

그래서 생각했던 게 일단은 물리적 한계 때문에 촬영 못 하면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데 고속도로 위에는 식사 때 경찰들이 하루에 2번 도르래를 올리도록 허용을 해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음식과 같이 캠코더를 넣어서 촬영을 좀 부탁해보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될지는 몰랐지만 믿었습니다. 무작정. 잘 찍으실 거라고 생각했고 사실 (카메라) 설명서를 보내 드렸는데 안 보셨대요. 본인들이 직접 찍으면서 촬영하신 거고 그렇게 저랑 협업하시게 된 김승화 감독님이십니다.

 

그리고 김미영 감독님은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 안에 계셨어요. 뭔가 찍고 싶어 하시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부탁을 드렸고 그때는 경비가 삼엄했는데요. 박카스를 여섯 상자 산 다음에 위에 네 상자는 진짜 박카스, 나머지는 캠코더를 분해해서 안에 넣어서 들여보냈고, SD카드 같은 것은 담뱃갑에 넣어서 보내거나 하는 방식으로 했어요.

 

처음에는 물리적 한계 때문에 부탁을 드렸는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분들이 연출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당연히 공동연출을 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고 협업으로 가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이 작업을 하기 전부터 한국 영화에서 노동자들을 깍아내리는 정서가 깔려있어서 노동자를 안 좋게 봐요. 그래서 노동자들을 다룬 영화들이 도덕적으로 선량한 약자로 그리고 신파 서사를 써서 도덕주의적인 전략을 쓰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영화는 관객들이 보고 눈물을 흘리고 나와도 저는 좋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당사자가 아니지만, 협업하고 섞이면서 저도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과 함께 대안적인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진행자

말씀을 들어보니 처음부터 미학적 의도가 들어간 것은 아니고 현실적 조건 때문에 촬영을 못 해서 카메라를 일반인이 거의 첩보 작전처럼 마치 옛날에 북한에서 무전기 보낸 것처럼 들리기도 한데요. 아무튼 그런 방법이 선택되었고 결과를 본 과정에서 이분들이 그냥 찍는 것이 아니라 연출을 하고 계시더라. 그래서 당연히 연출자로서 감독으로 역할을 드려야 한다고 판단을 하시고 영화도 사실 그 맥락 안에서 힘을 얻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요.

 

하나 더 여쭙고 싶은데요. 이전에도 이런 기록 작업을 많이 하시고 정치적 문제나 사회의 변화에 필요한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하신 것 같은데 영화 후반 맨 마지막에 삼보일배하는 장면이 나오죠. 저는 이 영화를 잘 요약하고 있는 그런 설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마지막에 배치한 것이 이 영화를 정말 잘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삼보일배가 세 발걸음 가서 한 번 엎드려야 되잖아요. 멈춰야 하잖아요. 우리가 어떤 목표한 지점을 쉽게 빨리 달려가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계속 가고 싶어 하는 곳을 한 번에 도달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가다가 멈추고 때로는 쓰러지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항상 멈춰야 하고 멈출 때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그러면서 성숙해나가고 결국에는 우리가 가려고 했던 곳에 도달하고, 도달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고, 그 과정 속에는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한다 그래서 저는 영화를 보고 나서 마지막 삼보일배는 참 정리가 잘된 부분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인물들이 계속해서 발전하고 성숙해나가는 모습들을 보게 되는데요. 감독님이 이 영화를 끝내고 나서 스스로 나도 이만큼 성숙했네 하고 느낀 부분이 있으신지 듣고 싶습니다.

 

김도준 감독

일단 제가 앞으로 얼마나 더 작업할지 모르겠지만 이 작업만큼은 각별한 경우 같아요. 우여곡절도 많았고 하늘이 도운 적도 많았고, 작업하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서 낯을 가리는 편이라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뭔가 투쟁하고 운동하면 뜻이 맞는 사람끼리 공동체를 만들어서 해야 하는데 저희는 한국 사회는 허용된 공간 안에서 뭔가를 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 점을 영화가 예습시켜준다는 생각도 들었고 개인적으로는 변화.. 어려운데요

저는 편집을 여러 번 하면서 1년 동안 제가 많이 바뀌는 것 같았어요. 처음에는 제 생각이 있을 수 있잖아요. 투쟁과 또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고 그런데도 어떤 각자의 사정을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편집하다 보니까 그렇다고 제가 중립은 취하고 싶지는 않지만, 영화도 중립을 취하지 않지만 좀 더 상황마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들여다보게 되는 계기가 됐던 것 같습니다.

 

진행자

작년에도 (<깃발, 창공, 파티>라는) 노동자 투쟁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있었어요. 3시간 가까이 길었고, 작년에 대구 경북지역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만들어서 투쟁하는 3시간 가까이 되는 긴 작품이었는데 (<깃발, 창공, 파티>라는) 영화를 추천했던 이유는 관객들이 그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에 현장에서 마음을 보태지는 못하더라도 영화를 보는 동안에 그들이 갖고 있던 상황의 감정들을 한 번 경험해 볼 필요는 있다. 영화가 굉장히 거칠고 길지만 단지 3시간이라도 같이 겪어 볼 필요가 있다고 얘기를 했었거든요.

 

혹시 여러분들이 오늘 영화를 보면서 현장에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거나 연대 의식을 가졌다거나 오히려 반감이 되었거나 하는 감정을 느낀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도준 감독

저도 그 생각을 많이 했는데 사실 이런 영화가 많지 않잖아요. 영화가 만들어지는 데 목적이 다 다르지만, 그 경험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영화가 선택한 화법이 여러 가지라면 자연스럽게 젖어 들게 하는 방법을, 현장에 있고 사람들이 있고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에 있던 사람이 중간에 나오고 후에 또 나오면서 달라진 모습들을 발견하고 그런 것들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 직접 나서서 이게 옳다 주장하는 영화는 만들고 싶지 않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좀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관객1

영화를 보면서 사실 3시간 정도의 러닝타임이라는 것이 연출하면서도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라고 봐요. 내 영화를 3시간으로 만든다는 것은 대단한 결심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왜 감독님께서 3시간까지 들였을까 고민하면서 영화를 보게 됐는데 다 보고 나서 1,500명이 한 달 만에 해결될 일이라 생각하고 들어갔지만 실패하고 갈등을 빚고 내부의 싸움으로 번지기도 하고 마지막에 죄책감을 느끼며 떠나야 하는 모든 과정이 굉장히 동참하게 되는 시간이었고 필요한 러닝타임이었다는 시간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김도준 감독

감사합니다. A에서는 영화가 길다고 행사 시간 중간에 상영해야 하는데 두 시간 정도로 줄여 주면 안 되냐 하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고 결국에는 상영을 안 했어요. 배급사에서도 2시간으로 줄여라, 2시간 반으로 줄여 달라고 하셔서.. 저만의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온전한 뭔가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거든요. (말씀에) 너무 동의하고 감사합니다.

 

관객2

저도 영화 잘 봤고요, 처음에는 세 시간 동안 생각보다 적나라하게 다 드러나 있더라고요. 인위적으로 편집된 부분도 없고 정말 현실적으로 있는 그대로 드러나서 처음에는 당황했는데 감독님이 영화에 관해 설명해주시니까 그런 부분이 이해됐습니다. 현장에 대해 충분히 느낄 수 있어서 유익했고요. 이전에는 관심이 없었던 민주 노동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는데 정말 이해관계가 너무 많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고 지금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피력을 하고 그거에 따라 한국도로공사가 자회사를 만들자 했는데 그것의 이면에 이런 문제가 많이 일어난 거잖아요. 정책적으로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걸 더 확실하고 정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또, 자회사가 일으키는 부당한 대우 등과 같은 부분은 정책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개인 윤리적인 부분이 많은 영향을 미치는 거니까…. 개인적으로 그런 윤리의식도 많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많이 배웠던 영화입니다. 감사합니다.

 

김도준 감독

감사합니다. 영화를 굉장히 디테일하게 정확히 봐주신 것 같아요. 저도 제가 배운 것 중에 하나도 관객분과 같은 부분인데요. 저도 현실이나 세상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는 걸 배웠고 영화에서 중요했던 게 노동자들의 언어였는데 이분들이 말하는 것, 쓰는 것, 듣는 것이 가장 중요했어요. 다 살리고 싶었고 기록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부에서 이런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도 드물고 또, 여성들만 있잖아요. 기록하는 것도 중요했기 때문에 (중간에) 끊고 싶지 않더라고요.

 

진행자

이제는 다큐멘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장르가 되었는데요. 다큐멘터리가 관객과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친숙한 것들을 많이 씁니다. 관습화되어있는 형식이 많이 나오는데요. 이 영화에서는 그런 관습화된 형식을 안 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스틸 장면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기록 영화 보면 사진을 정말 많이 씁니다. 과거 자료를 보여주거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갔다 오죠. 그때는 사진으로 스틸 장면을 자주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기록 안된 것을 다 무시해버려요. (웃음)

 

초창기 점거할 당시의 얘기를 인물들이 하는데 그 장면들이 만약 찍혀 있었다면 보여줬겠죠. 그게 더 강한 임팩트가 왔을지도 모릅니다. 이후의 기록에서 말로 들려주는 것보다 더 강하게 전달됐을지도 모르는데 기록이 안됐으므로 그대로 영화를 끌고 갔다는 것이 미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이 없다는거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롱테이크가 많다는 건데요. 다큐멘터리 영화는 일부러 관객들이 지루할까 봐 카메라를 많이 옮겨 다니고 찍습니다. 또는 카메라를 여러 대 사용하죠. 같은 장면을 다른 각도에서 찍고 영화의 리듬도 만들어내고 효과도 만들어내고 감정도 전달하기 위해서죠. 그런데 이 영화는 크레딧에 촬영자가 6명 있지만 매 순간 현장에서 몇 대의 카메라가 돌아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에서는 한 대의 시선만을 이용하고 있거든요.

 

그것만 보면 굉장히 지루할 수 있지만 그걸 보여주고 있거든요. 대개는 그럴 때 카메라가 앞쪽으로 이동하든지 좌우로 이동해서 개별 샷을 따로 찍어서 보여주거나 현장의 다른 인서트를 보여주면서 리듬감을 만들어내서 전환하는데 이 영화는 그런 것이 없어요. 그래서 이 영화의 미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현장 내에서 기록할 수 있는 건 기록하자는 거죠. 전반부에 참여자들이 직접 촬영하고 중반 이후부터 정식으로 감독이나 전문가들이 찍었어요. 보는 사람들은 의식하지 않고 보죠. 그러려니 하고 보는데 그런 것이 오히려 효과가 생긴 것 같아요. (중반 이후부터는) 전문가들이 찍었지만, 현장 느낌 그대로 찍은 것이 영화 전체 흐름을 잘 구성하게 해준 도움이 되었고 그 느낌들을 잘 이어갔다고 생각합니다.

 

관객3

그 이후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나요?

 

김도준 감독

지금은 정규직으로 받아졌는데 요금수납을 하고 싶으면 자회사로 가라고 했는데, 자회사는 비정규직이잖아요. 정규직으로 하고 싶으면 환경정비원으로 가라 해서 뿔뿔이 흩어져있습니다. 본인의 거주지와 일하는 곳이 많이 떨어진 곳으로 발령을 받기도 하고요. 그래서 가족들과 따로 사는 분들도 많아요. 안에서는 투쟁을 다시 하려고 이미 흩어져있어서 쉽지 않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