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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봄: 파둑 혁명> 씨네토크 본문

2021년 12회 부산평화영화제/기록문

<미얀마의 봄: 파둑 혁명> 씨네토크

알 수 없는 사용자 2021. 12. 31. 16:11

<미얀마의 봄: 파둑 혁명> 씨네토크

2021.11.18

제12회 부산평화영화제 씨네토크 기록

<미얀마의 봄: 파둑 혁명>

 

일시 : 2021.10.28.(목)

장소: BNK부산은행 아트시네마 모퉁이극장

영화: <미얀마의 봄: 파둑 혁명>

기록: 박선재, 김지빈

참석자

모더레이터: 박지연(부산평화영화제 프로그래머)

게스트: 칸진(미얀마 학생)

   

진행자

안녕하세요. 프로그래머 박지연입니다. 매년 영화제에 영화를 선정하면서 항상 많이 고민해요. 특히 개막작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가 고민인데, 늘 하고 나서 최선을 다하지만, 최선을 다한 만큼 만족도가 있지는 않아요. 근데 올해는 제가 이 영화를 찾아내고 우리가 정말 어렵게 해외 배급사랑 영화를 직접 가져오는 일은 드문데 이 영화는 해외 배급사에 직접 연락해서 영화를 꼭 상영하고 싶다고 해서 가져온 작품이고, 상영하고 나서 내가 이 영화를 정말 잘 선택했다라는 마음이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을 쓸어내리면서 영화를 봤습니다.

 

이 영화에 관해서 이야기해주실 미얀마 유학생 대표인 칸진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영화는 두 가지 의미가 큰 것 같아요 하나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을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아무리 작은 다큐멘터리라도 최소한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고 또 어떤 감독은 10년 넘게 걸리기도 하는데요. 사실 이 일은 2021년에 일어난 일인데 벌써 다큐멘터리가 한 편 나왔다는 건 이 일이 얼마나 우리가 세계 각국에 알려내고 급박하게 정말 목숨을 걸면서 이 영화를 찍은 거거든요. 그런 거에서 정말 유의미한 영화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미얀마를 바라보면서 사람들이 우리의 광주를 떠올리고, 광주를 이야기하면서 사실은 연대의 마음을 가진다는 의미에서는 좋은데, 한편으로는 우리의 경험을 대상화시켜내는 것들로서 미얀마를 바라봤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정말 다르다는 게 느껴지잖아요. 사실은 이 영화는 시위에 참여한 한 여성의 눈으로 만난 세 사람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여성 운동가, 소수민족 운동가, 예술을 하는 사람 사실은 미얀마라고 해서 우리나라와 떨어져 있는 나라 속에서도 소수 힘없는 여성 인권운동가 예술가 이런 사람들을 이야기를 포착해내고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의미를 가지지 않냐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영화를 보기 전에 다들 아시겠지만,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의 상황들, 2월 이전의 상황들을 간략하게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칸진

제가 먼저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제가 말한 내용은 나라를 대표하는 미얀마 정부를 대표하는 공적인 답변으로 받아들여 주지 마시고 나라를 사랑하는 평범한 한 국민의 생각으로만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번 사태 이전의 이야기를 하면 역사가 긴데요. 짧게 설명하자면 2008년에 우리나라의 군부가 헌법을 개정하고 2010년에 선거를 했습니다. 근데 2008년 헌법은 민주국가를 표현하는 헌법은 아닙니다. (헌법에서는) 미얀마 상하 의원 25%를 군부가 계속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군부가 선거에 참여할 필요도 없고 어떤 정당이나 정부가 이기든 군부가 항상 상하 의원의 25%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남은 75%를 나라의 정당들이 선거에 참여하는 거죠.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주요한 결정을 내릴 때)은 국회의원의 75% 이상이 동의해야 헌법을 개정할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의 75%가 동의해야 하는데 25%를 군부가 다 잡고 있으니까 군부가 동의하지 않는 이상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예를 들어 2012년에도 영화에서 보셨겠지만 (미얀마 서부 지역의) 로힝야족 사태가 있었습니다. 2017년에도 크게 또 일어났고..

그때에도 국회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려고 할 때마다 군부의 결정권이 강한 거죠. 나머지 75%라고 모두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일부는 군부에서 복장만 갈아입은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아웅 산 수치 여사가 대표하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2015년 선거에서도 80%의 결과로 이겼지만, 국가의 치안과 같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의회에서) 한 번도 75% 이상으로 이겨본 적이 없습니다.

 

진행자

굉장히 문제가 복잡하네요. 25%는 군부가 자동으로 의회에 들어가 있고 75%가 선거로 의회를 구성하게 되어있는데 이 75% 안에서도 군부 정당이 포함된 거죠. 그럼 헌법은 어떻게 개정이 되는지 정말 난감한 현실이네요.

 

사실은 영화 속에서도 봤지만 수치 여사에 대한 지지와 응원의 마음들은 수치 여사가 감금됐을 때부터 오랫동안 지지해왔고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생각을 했었는데 최근에 로힝야 사건을 바라보면서 수치 여사에 대한 비판을 국제사회에서 많이 했던 것 같은데요. 그 이야기가 영화에서 잠깐 나오죠.

 

영화를 보면서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는데요. 이렇게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거나, 어떤 사건이 있어도 언론이 막혀 버리면 힘들을 결집하기가 참 힘이 든 데 그래서 저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민주화 시위를 바라보면서 새로운 형태의 여성들과 음악을 통해서 그리고 시민운동과 불복종 운동이 다양한 에너지로 터져 나오는구나 싶어요. 군부가 힘을 가지고 있고 아웅 산 수치 여사에 대해 어떻게 판단해야할 지도 혼란스러운 가운데서도 젊은 에너지라는 것이 엄청나고 새로워서 대단한 힘들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성 화자분이 마음은 어디 있든지 간에 나는 민주화 운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이 마음이 칸진님도 똑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일요일마다 부산역 앞에서 시위하셨잖아요. 그 이야기를 좀 부탁드립니다.

 

칸진

쿠데타 사태가 일어나고 2월부터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부경대에 미얀마 학생들이 많으니까 부경대학생들끼리 집회를 열었는데 그 당시 부산역에서 한국시민단체와 미얀마 노동자, 사업가 등 미얀마 사람들이 모여서 집회를 열었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같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관객1

지난번에 모퉁이극장에서 커뮤니티시네마를 하면서 처음에 칸진 씨에게 마이크를 줬을 때 거의 10분 정도 너무나 미얀마 현지 얘기와 답답함을 전하고 싶어서 마이크를 못 놓는 것을 보고 이번에 부산평화영화제에 제일 먼저 섭외해서 이야기하실 기회를 드려야겠다고 고민을 하시더라고요.

 

(코로나 사태가 심해져) 방학에도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미얀마 유학생들의 상황, 이 자리에 같이 활동하시는 미얀마 유학생들도 와 있지만, 고립감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 절망감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학생들께서는 어떻게 이겨내고 계시는지 듣고 싶어요.

 

칸진

고향이 그립죠. 갈 수도 없고 고향을 생각하면 답답하고 이 상황이 언제 마무리될지도 모르는데. 저희가 여기서 바라보고 희망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힘이(우리를 밀어주는 힘이) ‘혁명에 승리하자’ 하는 힘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미얀마 동지들과 같이 싸우진 못하지만 여기서 주말이나 방학에 알바도 하고 돈도 벌어서 (미얀마로) 보내자. 계속 모금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답답할 때마다 잠이 잘 안 올 때도 있고, 밥 먹을 때도 갑자기 미얀마 생각나서 눈물 흘리고 내가 여기서 편하게 밥을 먹고 있는데 내 가족은, 동지들은 밥을 잘 먹고 있을까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고 그때마다 군부에 미운 마음이 듭니다. 그것을 원료로 사용해서 공부와 일도 열심히 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뉴스가 잘 전해지지 않다 보니 미얀마가 상황이 정리됐다고 생각한 적도 잠시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미얀마 민주화와 코로나가 겹쳐서 이중적으로 힘든 것을 알게 되었고 뉴스도 계속 올라오고 있더라고요. 얼마 전에 군부의 입장을 발표했던데 세계의 압력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대처하겠다는 군부의 발표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압력이 있으니 석방을 해주도록 하겠다며 교도소 앞에서 (잠시) 석방하고, 사진을 찍고 그대로 다시 감옥을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최근의 상황들에 대해 알고 계신 게 있으시면 간단하게 들려주세요.

 

칸진

영화에서는 2~3월의 이야기들을 (영화에) 잘 담고 있습니다. 3월부터 군부가 시위대를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총도 쏘고 즉각 사살 등 총을 머리에 쏘고 미얀마의 뉴스들을 보면 다 머리에 총 맞고 대부분이 다 그렇습니다. 영화에서 나온 친구도 산으로 도망갔다고 하는데 도망은 아니고 도시에는 계속 이런 시위가 되고 시위를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이래서 처음에는 평화 시위를 했는데 군부가 말을 안 듣잖아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산으로 대피하고 원래 소수민족 반군들이 있었어요. 그 무장세력 쪽으로 가서 훈련을 받고 그런 상황이 이어지고 있고, 지금도 미얀마군하고 시민방위군이 계속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진행자

드럼 치던 ‘조’가 산속에서 훈련하겠다는 결심하는 사진을 보고 마음이 아파져 왔던 것 같습니다. 칸진 님이 미얀마 민주화를 바라보면서, 이 영화를 보고 특별히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칸진

하고 싶은 얘기는 미얀마를 계속해서 지지하고 응원해 달라고 부탁드립니다. 왜냐면 요즘은 아프간 사태도 있었고 미얀마에 대한 이야기가 뉴스에 많이 안 나오고 있어요. 처음에는 언론에 계속 나오니까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줬는데 언론에 (미얀마 이야기가) 안 나오니까 어떤 분들은 미얀마 사태가 정리됐다, 군부가 승리했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이 자리에서 말하고 싶은 건 아직 정리가 안 됐습니다. 군부도 승리하지 못했고 우리도 계속 싸우고 있습니다. 미얀마 국민들을 계속 지지하고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민단체 분들이나 시민들은 계속 관심을 두시는데 국제사회에서는 UN 같은 국제기구는 처음 2월부터 계속 선언문만 내고 있습니다. 선언문만 내고 아무런 도움이 없습니다. ‘석방하라’, ‘양쪽에서 화해하라’ 그러는데 우리가 잘못한 것은 없고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서로 화해하라 하는데 우리는 늘 자유와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밝혔는데도 국제사회는 아직도 태도가 변하지 않습니다. 선언문을 계속 보내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행동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진행자

올해 부산평화영화제의 주제가 연대에 관한 이야기라서 홍콩 민주화 시위, 방글라데시,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 <쿠오바디스, 아이다>라는 작품이 보스니아 내전을 다룬 이야기인데요. 당시 유엔이 얼마나 무능했는지에 관한 비판입니다.

 

저는 미얀마 민주화 시위가 시작되면서 바로 이것은 너무나 명백한 일이니까 또, 쿠데타 이후 UN 회의가 열려서 UN이 바로 국제적인 의사를 표시하고 즉각적으로 개입을 할 줄 알았는데 계속 회의만 하는 모습이 놀랍기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기업이 미얀마 군부의 실질적인 돈줄이 된다는 뉴스도 정말 분노스러웠는데요.

 

칸진

한국의 포스코라는 대기업이 미얀마 군부와 사업을 열었습니다. 포스코가 미얀마에서 하던 사업을 크게 3가지로 할 수 있습니다. 제일 큰 것이 가스전 개발 사업이고요. 두 번째는 강판 사업, 관광(호텔) 사업입니다. 이 사태가 벌어지면서 2~3월에는 아무래도 관광 사업이 일이 안 됐죠. 그 이후 관광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했고, 한국에서 한국분들이 포스코에 미얀마 군부와 (사업을) 끝내라고 이야기가 해왔어요. 그 압박감이 커지니까 포스코가 철판(강판) 사업을 중단했습니다. 가스전 개발 사업은 큰 이익을 가져오고 있기 때문에 그보다 이익이 얼마 안 되는 사업을 중단시키고 한해에 수천억을 벌고 있는 가스전 개발 사업은 아직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건 이해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바라는 것은 미얀마 사업을 철수해달라는 것이 아니고 잠시만 미얀마군한테 배당금을 멈춰달라 그런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포스코가 정확한 답변은 없지만, 저희의 소리에 관심 가져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진행자

25%의 군부가 너무나 크게 느껴지고, 포스코가 너무나 큰 기업이지만 우리가 함께 연대하고 저항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꼭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객2

영화 잘 봤고 저는 똑같이 대학원생인데요. 학생으로써 어쩌면 내 친구들이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쓰러져가는 것을 보면서 앞이 흐려지더라고요.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 목을 막히게 했는데 투쟁해주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이 정말 감사한 일이고.. 한 가지 궁금한 것은 말씀하셨듯이 전체적으로 미얀마에 대한 관심이 처음 같지는 않잖아요. 저는 운 좋게도 미얀마 친구가 있어서 접하는 편인데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전혀 모르는 경우도 너무 많고 끝났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많아서 어떻게 하면 한국 사람들이 미얀마의 소식을 잘 전달받을 수 있을지 이런 채널이 있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칸진

저는 미얀마에 관한 정보들은 주로 페이스북을 통해 전달받습니다. 페이스북에서도 미얀마의 상황을 전해 듣고 한국어로 번역해 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 페이지들이 있고,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페이스북을 미얀마처럼 활발하게 이용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미얀마 현지 상황을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코로나와 백신을 다 맞았잖아요. 코로나 상황이 풀리면 12월부터 계속 집회를 적극적으로 계속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리고 한국의 언론사와 미디어에 배포하고 뉴스에도 나오도록 열심히 노력해보겠습니다.

 

관객3

영화에서 ‘조’가 군사 훈련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시민군과 군부가 대치하는 상황이라든지 사례들이 있는지 아니면 실제로 시민 무장운동 이런 것까지 전개되고 있는 건가요?

 

칸진

대도시 위주로 아직 평화 시위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군부의 명령이 즉각 사살이라서 평화 시위할 때는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6~7월부터 저의 친구들이 쓰는 방법이 플래시몹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나타나고 갑자기 사라지는 방식이에요. 예전처럼 피켓을 들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현수막 같은 것을 가방 안에 몰래 숨겨서 순찰 도는 장갑차가 하루에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확인하고 (순찰이) 비어있는 시간에 시위하고 사진 찍고 동영상 찍고 사라지는 방식을 쓰고 있습니다. 대규모는 아니고 10~20명 정도. 그것도 종종 (군에게) 잡힙니다..

 

그리고 지방에서는 날마다 전쟁입니다. 군부도 처음에는 청년들이 무기를 들 거라고 생각 못 했는데 청년들이 방위군을 세우면서 저항을 하니까 군부가 전투기까지 사용하면서 공격하려고 합니다. 불로 태우고 무차별적으로 시민군하고 일반 시민을 구분 안 하고 마구잡이로 쏘는데.. 날마다 이어지고 있습니다.

 

진행자

사실은 이곳에 칸진 님 뿐 아니라 미얀마 시위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오셨는데요.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관객4

반갑습니다. 저도 오늘 영화를 보면서 이(쿠데타 후의) 장면들을 화면으로 크게 보는 게 처음이었어요. 영화관에서 혼자 울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현장에 가 있는 느낌도 들고 이유 없이 미안하기도 하고요. 저도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고 있는데도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민주주의 미얀마의 혁명이 꼭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없애는 것뿐만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도 광주 사건이 있었지만, 한국 내부에만 조용히 성공했고 이제는 미얀마의 사건이 인터넷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다 지켜보고 있어서 전 세계의 변화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저는 희망이 있습니다. 꼭 성공하리라 생각합니다.

 

관객5

저는 부산에서 공부하고 있는 미얀마 유학생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2~3월에는 한국에 있으니까 현장에 대한 글이나 사진을 보고, 생동감이라든가 다가오는 현실감이 없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때 그 열기를 다시 느꼈습니다. 이제는 거리에서 시위하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저희가 계속 평화 시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여성과 많은 젊은이가 무기를 들고 싸우려 합니다. 한국이 많이 도와주셨으면 하고요.

 

또, 여성의 시각에서 보자면 얼마 전에 감옥에 잡혀갔던 젊은이들이 다시 나왔는데 여성들도 많았습니다. 그중에는 성폭행당하고 말로 표현하지 못할 나쁜 일을 당한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그 친구들을 대신해서 소리를 높이려고 합니다. 미얀마에 있는 여성과 아이들에게 많이 관심 가져주시고 많이 지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영화에서도 나왔지만, 로힝야족이 많이 살았던 라카인 지역의 소수민족입니다. 소수민족에 있는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그런 고통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지금(자리에서) 그런 심정을 잘 얘기할 순 없지만, 나중에 민주주의가 된다면 소수민족을 지지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더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객6

저는 미얀마 사람은 아니고 필리핀에서 왔습니다. 저희도 1986년에 이런 문제가 있었거든요. 저도 그 때 고등학생이었고, 거리에서 같이 싸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포기하지 말고 계속 싸우면 희망 있습니다. 앞으로는 우리 이길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칸진

라카인족과 로힝야족 사이 오랫동안 갈등이 있었습니다.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지역을 나누게 되었는데 라카인족도 방글라데시 쪽으로 가 있는 사람도 있었고 로힝야족도 이쪽으로 넘어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 이후에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도 서로 이해하고 문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영화를 보고 마음속에 정리가 잘 안 된 상태로 이 자리에서 모국어가 아닌 한국어, 외국어로 말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관객7

70년대 대한민국의 김수영 시인이 ‘풀은 잠시 드러누울 뿐이지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같은 힘없는 풀들은 바람이 부는 대로 잠시 누웠을 뿐이지 바람이 지나가면 다시 일어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미얀마를 지지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풀/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1968.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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