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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제6회 부산평화영화제/관객 리뷰

공식경쟁6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김시은

 

한 여자가 음식물 쓰레기가 담긴 까만 봉투를 들고 나온다. 그녀는 다른 이의 쓰레기봉투에 자신의 쓰레기를 채워 넣는다. 그러다가 현장에서 범행을 들키고 만다. 이번이 처음도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야간작업도 계속 지원하고 다른 일자리도 더 알아보고 있다. 주인공인 홍매는 이렇게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20대 여성이다. 좁은 집에서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를 홀로 모시며, 부당한 대우에도 반발할 여유가 없다한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의족을 해드리기 위해 목돈을 모으고 있는 효녀라고 할 수 있었다.

자신의 여유는 버려둘 정도로 아버지를 위하는 홍매임은 틀림이 없는데, 나는 왠지 모르게 석연치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살갑지 못한 딸이다. 살갑지 못함을 넘어 어딘가 모르게 아버지를 불편해한다. 아버지의 방문은 언제나 굳게 닫혀있으며, 필요한 용건이 생길 때만 요란하게 문을 두드리면서 홍매를 부른다. 홍매는 대체로 밝은 표정을 짓지 않지만 아버지의 방에 들어갈 땐 특히나 경직된 모습을 한다. 아버지를 싫어하는 것일까? 그렇지만 의족을 해드리려고 하는 기특한 효녀인데?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2015)40분이 조금 되지 않는 단편영화이다. 거칠고 각박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주인공들 때문에 영화 자체도 내내 경직되어있다. TV를 본다거나 음악을 듣지도 않는 홍매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그녀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느끼게 한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호통을 들을 때면 초탈한 듯 색 없는 표정만을 짓는다. 꽉 막혀 답답한 공장에 출근을 하고, 맛없는 식사도 살기 위해 먹어 넘긴다. 영화를 지배하는 홍매가 하루하루를 겨우 삼키기 때문에 영화도 활기가 넘치기 보다는 흘러가는 사건을 초연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 영화는 부산평화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올랐다. 그래서 나는 평화라는 주제 아래에서 영화를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영화에서는 폭발하듯이 터지는 분쟁이 딱히 없다. 분쟁이 생기더라도 주인공인 홍매는 휘말리는 것을 원하지 않고, 그냥 덮고 지나가 조용히 지내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분명히 홍매는 매일 매일을 분쟁과 다툼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아무에게도 내보이지 않지만 혼자 그것들을 모두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도 아주 미세한 그 불편함을 실제로 느낄 수가 있다.

일이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홍매이지만, 그녀가 더 나은 상태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은 또 다른 불편함을 낳게 된다. 해결됐다 싶으면 더 큰 난리가 나고, 난리를 수습했다 싶으면 더 큰 사고가 나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맨 마지막 장면이 되어서야 홍매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덤덤하고 감내하는 홍매가 아니라 표현하고 쏟아내는 홍매를 말이다. 그녀가 생각해왔던 방식은 아니겠지만 영화는 어쨌든 홍매의 불편함을 해소해버린다. 오래도록 외면해왔던 그 불편함을 제대로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짓무른 고름이 터져 냄새가 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비교적 말끔해질 터였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더 나은 것, 편안한 것을 추구하지 않나. 홍매는 그 불편함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소하려고 했다. 털어놓는 목소리는 미친 듯이 떨리지만, 털어놓는 순간 그 마음을 담아두던 공간만은 분명히 후련할 것이다. 또 다른 감정이 쓸려올지언정 더 이상 죄책감을 키워나가지는 않아도 될 것이다. 홍매는 그제야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