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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제8회 부산평화영화제 /★관객리뷰

[공식경쟁2] <시 읽는 시간> '나는 도구이고 시가 주인공일 수도 있다.'

부산평화영화제 공식경쟁 영화 <시 읽는 시간리뷰

 


  직장 생활에 지친 사람, 시위와 투쟁에 일상을 바친 사람, 예술과 고통을 말하는 사람 등의 이야기는 외면 받는 동시에 너무 자주 인용되어 진부해져 있다는 이중적 위치에 있다. <시 읽는 시간>은 이들이 풀어내는 이야기가 자칫 그렇고 그런 관습적인 기표로 전락하지 않도록, 이들의 이야기에 대해 우리의 심리적 반응이 기계적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시를 끌어오는 방식을 택한다. <시 읽는 시간>에는 말 없는 얼굴, 인파가 몰린 에스컬레이터, 어둠, 글씨로 가득 찬 공책, 걸려 있는 기타들, 산동네, 하마무의 작품 등이 나온다. 이 장면들은 스토리라인을 이루는 인과관계로 묶여 있지 않아서, 의미상으로 거리감 있는 단어들이 물리적으로 거리를 좁힌 채 꼭 붙어 나열되어 있는 시의 모습을 닮아 있다. 논리적 진전을 이루어내지 않는 이 일련의 화면들은 셈해지지 않는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적합한 형상을 띠고 있다. 종종 <시 읽는 시간>의 화면들은 중첩되는 모습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장면과 장면이 전환되는 사이의 순간이 가시적으로 연장되어 일어나는 이와 같은 중첩은 시를 읽는 시간이 품는 의미와 맞닿는다. ‘안정적인일상(직장)생활이 얼마나 불안정한 마음 위에 지탱되고 있는지를 말하는 등장인물들이 시를 읽는 시간은,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의 노동 시간으로 명명됨을 벗어난 시간이고, 집중력을 쏟아야 하는 피로한 시간이나 시급 얼마짜리로 계산되어야 하는 시간들 틈새를 비집고 자리 잡는 시간이다. 이 시간으로부터 들려오는 화자들의 목소리에 담긴 것은 고독으로 수렴해 버리는 쓸쓸함이 아니라, 삶의 그늘을 마음껏 향유하는 용감한 외로움이다.

 

  영화는 나는 도구이고 시가 주인공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된다. 시 읽는 시간에 사는 사람들은 그러한 도구로서의 입지를 긍정적으로 수행해 내는 이들이다. 이 도구는 어떤 목적에 타율적으로 봉사하는 수단이 아닌, 시와 몸과 삶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능동적 기관이다. 그들은 시를 새로 읽고 시로 하여금 새로 읽히게 하며, 살듯이 시 읽고 시 읽듯이 산다. 카메라가 시어 하나하나를 오래 머금고서 그들의 삶을 짚어낸 자리에 온기가 남는다. 내가 쓴 시를 읽어 주는 누군가, 내가 읽을 시를 써 주는 누군가, 내가 읽은 시와 네가 읽은 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누군가, 그 무수한 누군가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영화 속에서 물결친다. 그렇게 오하나, 김수덕, 안태형, 임재춘, 하마무 그리고 감독이 내어 놓은 말들은 독백이 아니라 대화가 된다.

 

관객리뷰단 임지민 (kiara909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