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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부산평화영화제/영화제 사진 및 GV

11.14. 공식경쟁 ① 〈기억의 전쟁〉 씨네토크

 

 

 

 

 

 

일시: 2020년 11월 14일 (토) 11시

진행: 변정희(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대표)

 

진행자: 관객분들 먼저 영화 소감을 나눠주세요.

관객 1: 우리나라 사람이 베트남 전쟁에서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을 총살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올해로 56살인데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되어서 굉장히 뜻 깊습니다.

관객 2: 베트남 전쟁의 아픔은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 번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관객 3: 피해자로서의 역사는 많이 연구하지만 가해자로서의 역사를 우리가 얼마나 기록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생각이 나요.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 여성들, 장애를 가진 분들,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의 입을 통해 증언되었다는 점이 마음에 많이 와 닿았습니다.

관객 4: 제가 어렸을 때 삼촌이 베트남에 파병되셨는데 나중에 고엽제 후유증으로 굉장히 고통 받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피해자라는 생각만 가지고 끊임없이 일본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는데, 우리도 가해 사실을 인정하는 국가가 되었을 때 보다 좋은 국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진행자: 저희 아버지도 베트남전에 참전하고 싶으셨는데 부대의 유일한 나팔수여서 참전을 못하셨대요. 그걸 굉장히 아쉬워하셨는데 그런 점에서 당시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관객 5: 저는 잘 몰랐던 역사를 영화를 봐서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호평중학교 친구들이 그분들을 안고 많이 알리겠다고 했을 때 눈물이 터졌어요. 이런 역사를 몰랐던 걸 반성했고, 앞으로도 많이 공부할게요.

진행자: 저도 똑같은 장면에서 눈물이 많이 났어요. 왜 그 장면에서 눈물이 터졌던 걸까요? (관객 5: 반성하는 마음?)

관객 6: 응우옌 티 탄님이 빨리 마음의 평화를 찾으시고 우리나라의 관계자로부터든 정부로부터든 사과를 받고 편안한 마음을 되찾으시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에도 피해자 한 분이 돌아가셨는데, 우리나라 위안부 할머니들과 똑같은 것 같아요. 자꾸 세상에서 사라지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는 꼭 마음의 평화를 찾으시면 좋겠습니다.

 

진행자: 이길보라 감독님도 여러분의 감상을 듣고 해주실 이야기가 많았을 것 같은데, 여러분께 감독님의 코멘터리를 읽어드리고 제가 여러분과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간단하게 나누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영화 <기억의 전쟁> 감독 이길보라입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우리 모두가 다른 방식의 삶을 고민하게 되었는데요. 그럼에도 이 영화를 부산평화영화제에서 상영할 수 있어 영광이고 감사합니다. 영화제 개최를 위해 애써주신 주최 측과 영화제 찾아주신 관객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영화는 베트남 전쟁 당시 있었던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을 다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5년 동안 제작하여 올해 2월 극장 개봉을 하였는데요. 이 영화의 시작은 서로 다른 기억의 충돌이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들이 존재하고 충돌하는 경험을 했는데요.

첫 번째로는 저의 할아버지입니다. 할아버지는 스스로를 ‘월남참전용사’라고 부르며 국가로부터 받은 훈장과 표창장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베트남 전쟁의 고엽제 후유증으로 오랜 기간 암 투병을 하다 돌아가셨습니다.

두 번째 기억은 학교에서 배운 베트남전쟁이었습니다. 현대사 파트에 베트남 전쟁은 이렇게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한국 전쟁 이후 극빈했던 한국은 월남전에 참전하여 막대한 경제적 발전을 이룬다” 그걸 달달 외웠습니다. 나중에서야 의문이 들었습니다. 전쟁에 참전하여 돈을 벌었다고? 왜? 그런데 할아버지가 거기 간 건가?

세 번째 기억은 할머니의 전쟁입니다. 저는 그 길로 달려가 할머니에게 묻습니다. 할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셨으니 직접 물을 수 없었거든요. 전쟁에 대해 아냐고 묻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쟁, 그런 거 나는 잘 몰라. 전쟁이라면 돌아가신 네 할아버지나 남자들이 더 잘 알지.”

이상했습니다. 할머니는 몸으로 한국 전쟁을 겪었는데 왜 전쟁에 대해 한 마디도 할 수 없다고 하는 걸까?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라면 사실 할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졌던 건 할머니인데. 거기서 주워들은 것만 해도 이만큼일 텐데 왜 할머니는 전쟁에 대해 한 마디도 할 수 없다고 하는 걸까?

할머니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네 할아버지가 장애아를 둘이나 낳은 나랑 이혼하려고 이혼비를 벌러 월남에 간 겨”라고요. 저의 전작 <반짝이는 박수 소리>에도 등장하는 저의 아버지의 존재, 그 장애가 할아버지를 월남전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저에게 존재하는 이 서로 다른 기억들의 조각을 맞추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카메라를 들고 베트남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세 명의 주인공을 만났습니다. 응우옌 티 탄 아주머니가 해주시는 따뜻한 밥을 먹고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죠. 이 영화의 출발은 이렇습니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저희 제작진이 현재 <기억의 전쟁 아카이빙북>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쓰고 있는데요. 책 제목은 아직 미정이지만 <기억의 전쟁> 비스무리한 것이 될 것 같습니다. 내년 1월에 북하우스에서 출간될 예정이니 기다리셨다가 꼭 책으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저희 영화는 내년 1-2월 정도에 재개봉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오늘 영화 좋으셨다면 재개봉 때 책, 영화와 함께 하는 개봉을 기다려주시고 다른 분들께 널리 알려주셔요.

아, 그리고 응우옌 티 탄 아주머니는 현재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한 국가배상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관련된 소식이 궁금하시다면 한베평화재단과 민변 홈페이지를 참고해보시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글로 소식을 전하게 되어 정말 아쉬운데요. 저는 다음 책과 영화를 준비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다음 영화 작업은 여성의 몸과 재생산권을 다루는 <Our Bodies 우리의 몸>이라는 작업입니다. 이것 역시 기대하며 기다려주세요. 고맙습니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이길보라 드림“

 

이길보라 감독님은 청각장애인 부모 아래서 태어난 분(코다)이시고, 최근에는 칼럼을 통해서 낙태법 폐지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공론화하고 계십니다. 우리 사회에서 쉽게 공론화하기 어려운 문제들, 가장 어두운 곳에 집중적으로 빛을 비추면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분인 것 같단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세 가지 전쟁, 6·25 전쟁, 베트남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이 떠올랐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됐고, 그 시기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지금도 기억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6·25 전쟁은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전쟁이었다고 평해집니다. 양민학살이 너무 심했다고 합니다. 동족끼리의 전쟁이기도 했지만 한 쪽은 빨갱이가 되고 한 쪽은 반공분자가 되는 극심한 이념의 대립 속에서 6·25 전쟁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민간인 학살이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베트남 전쟁은 1955년에 발발했고 한국전쟁은 1950년에 발발했습니다. 불과 얼마 되지 않는 세계사적 맥락에서, 베트남의 영혼과 나무와 바람, 아름다운 땅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전쟁이 한국도 마찬가지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6·25전쟁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공산당이거나 빨갱이라면 아이 여성 할 것 없이 양민학살을 자행했던 극렬한 전쟁의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베트남으로 건너갔던 한국군들. ‘무적의 따이한’이라고 불렸던 그들이 베트콩이라면 아이건 여자건 상관없이 끔찍한 짓을 저질렀으리란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치 가정폭력의 피해를 입은 아이가 또 다시 가해자가 되는, 폭력의 대물림이자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 부분이었습니다.

최근에 한국현대사 책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기록들을 보게 됐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쿠데타로 집권하면서 미국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낸 딜이 베트남 전쟁 참전이었던 거구요. 미국에서는 시큰둥하다가 베트남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한국군의 참전을 누구보다도 환영했다고 하죠. 미국 내에서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 논의와 흐름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베트남전 참전 반대 흐름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의 베트남전 참전은 전쟁과 평화의 화두로 다가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관점에서 베트남 전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이 영화의 제목에 굉장히 공감했습니다. 충돌하는 기억들이 서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의미도 있지만 기억을 하고 증언하는 것 자체가 이들의 싸움입니다. 이곳 원도심도 어떻게 보면 현재 진행형으로 기억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량에 가면 일본 영사관 앞에 소녀상이 있습니다. 자갈치에는 일본 강제 징용과 위안부 피해자가 끌려갔던 바다가 있습니다. 부산역 맞은편에는 초량 텍사스가 있습니다. 미군 기지촌이었죠. 미군들이 한국에서 여자를 돈으로 샀던 기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그런 게 삭제된 채 초량 텍사스가 되어 있어요. 중앙동은 과거에 성매매 업소가 즐비해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완월동이 있습니다. 식민지시기에 일본에 의해 최초로 형성된 유곽이었다가, 위안소였다가, 한국전쟁 때는 한국군과 유엔군의 위안소로 운영됐던 곳이죠. 아무도 이것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영화를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도시의 역사와 기억의 전쟁을 한번쯤 떠올리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관객: 공식적으로 일주일이었던 베트남평화기행에 갔다가 나머지는 제 개인적으로 베트남에 다녀왔는데 그때는 제사 지내는 데는 날짜가 안 맞아서 못 가봤어요. 영화 보면서도 저길 가야 되는데, 생각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마음을 접고, 그저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행자: 감독님의 코멘터리를 통해 응우옌 티 탄 아주머니가 한국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그분들의 싸움을 지지하고 기억하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이 국가배상 과정을 지켜보는 게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