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평화영화제 아카이브 2025. 5. 15. 14:58

일시 : 2024102517:25

장소 : 모퉁이극장

참석자 : 정연주(모더레이터), 송원근(<판문점> 감독)

작성 : 백주현

Q. 우리에게 필요한 평화는 어디에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점에서 정말 시기적절하게 개봉이 된 영화이기도 한데요. 2024년이 이런 모습일 거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만드셨는지.

A. 꼭 지금만을 두었다기보다 사실은 이 영화의 시작은 21년부터 시작됐었고 이 영화를 촬영할 때는 2023년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202366.25 전쟁 호국의 달이나 7월 정전협정이 맺어진 달이 되면 항상 숨겨진 전쟁 영웅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한국 전쟁을 두고 싸움의 대상 그다음에 북한은 무찔러야 되는 대상, 흡수, 통일해야 되고 짓밟아야 하는 상대, 이런 식으로 계속 보는 어떤 그런 시선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20192020년 이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판문점이라는 존재가 완전히 잊혀지게 된 것 같습니다2018년에 판문점 정상회담이 있고 2019년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국에 와가지고 판문점을 방문한 이후 북한 김정은을 만나면서 뭔가 평화가 이루어질 것 같은 종전선언이 이루어질 것이냐 마느냐가 굉장히 화두로 올라왔었는데 어느 순간 판문점이라는 존재 자체가 잊혀져버렸거든요. 윤석열 정부 들어서고 나서 이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도대체 판문점이라는 이 공간이 어떤 의미가 있고 왜 지금 우리는 이렇게 잊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거에 대해서 아무런 어떤 자각도 하지 못하고 판문점을 떠올리지도 못하는 것일까? 2024년에 북한이 오물풍선을 날리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에 북한군이 참전하게 되고 거기에 우리 정부는 공격 무기를 제공을 하겠다 라고 말하면서 마치 참전을 하겠다 라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들을 정부가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전쟁의 분위기로 가는 상황이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서로가 과격해지고 흥분해 있는 상태에서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만나서 대화를 할 수 있는 판문점이라는 장소를 아무도 떠올리고 있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예를 들면 독일에 있는 어떤 사회학자가 한국에 거짓말 읽는 법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그 서문에 그런 말을 표현을 써놓거든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서로 만나서 안전하게 대화할 수 있는 협상장인 판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이라는 곳에 내 책이 출간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의미를 가지고 있다라는 표현을 할 정도로 세계에서는 오히려 판문점에 관심을 가지고 그의미를 두는데 우리는 왜 이 판문점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고 이것이 정말 그냥 잊혀진 공간처럼 두고 있는 것일까? 왜 판문점이 이런 공간이 된 것일까? 그 연원을 한번 처음부터 따져보자고 생각했습니다. 판문점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인지, 그리고 그곳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그리고 판문점에서는 과연 어떤 대화가 이뤄졌었던 것인지, 그리고 지금 판문점은 왜 이런 공간이 되어버리고 만 것인지 이런 이야기들에 대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내용을 한 번쯤은 진지하게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기획하였습니다.

Q. 북측과 우리가 계속 대화를 과거에 해왔었는데 북측에서 볼 때 남한의 정권은 진보적인 정권이 들어서면 대화도 되고 뭔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 같은데 보수적인 정권이 들어서면 단절이 되어 버려서 북한의 입장에서 굉장히 혼란스러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윤석열 정부 들어서 가지고는 일체 아무런 대화도 없고 이렇게 경직되어 있는 상황에서 판문점이라고 하는 의미도 완전히 퇴색돼 버 렸는데 감독님이 보시기에 어떤 것 같습니다?

A. 사실 북한이 지금 대화하고 싶어 하는 건 남한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하지만 미국이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판문점이라는 공간이 우리 땅이라 우리가 관할할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하지만 사실은 그 땅은 우리가 정전협정 서명에도 들어가지 않았고 당시 군 통수권자로 유엔군 사령부가 남측을 대표해서 사인을 했기 때문에 전혀 우리가 대표할 수 있는 그런 권리를 내세울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대통령이 판문점을 방문할 때도 미국에 있는 유엔사령부의 허가를 받아야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가장 큰 맹점은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그렇다면 결국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미국 정부한테 요청을 한다거나 유엔군에 강력하게 요청을 해서 이런 문제가 있을 때 같이 대화를 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을 한다든지 해야 되는데 이들이 지금 한반도에서의 일들을 조용히 지금의 상태를 그냥 유지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무책임한 태도가 이 영화 속에서도 고스란히 보이고 현실에서도 고스란히 미국의 무대응, 무책임한 입장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이 판문점이라는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분명히 우리나라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거에 대해서 관할하는 주체가 아니라는 것이 함정이면서 비극이 아닌가라는 저생각이 듭니다.

Q. 감독님이 말씀하신 판문점에 대한 남한 측의 관리를 살리려면 종전협정이 우선 되어져야 한다는 말인가요?

A. 맞습니다. 종전이 돼야 됩니다. 트럼프가 2019년에 김정은을 만나면서 종전에 대한 희망이 나왔지만 판문점이라는 공간을 유엔이 가지고 있다 라는 것이 미국이 이 동아시아의 어떤 패권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어서 이런 것들이 아마 크게 작용을 했다라고 생각합니다.

Q. 이 영화를 만드시면서 특별히 어려웠던 점 또 재미있었던 일화라든지 그런 게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어려웠던 거는 판문점을 찍게 되면 제가 찍고 싶은 방향이 있었는데 제가 찍고 싶은 방향과 느낌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좀 전하고 싶었는데 코로나가 터지고 미군 병사 한 명이 판문점을 통해 귀순을 해버려서 더더욱 갈 수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이게 계속 노출시키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게 만들려고 하는 상황이 안타깝고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의미 있었다고 생각하는 건 정전 협상의 가장 쟁점이 됐던 포로 송환이라고 단편적으로만 알았지 그 포로 송환을 두고 과연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이런 부분들을 잘 몰랐거든요. 이번 촬영을 통해서 포로 송환에 대해 알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북한에서 돌아온 한국군 포로들이 나중에 용초도로 끌려 가지고 용초도에서 사상 검증을 받고 그다음에 거기서 또 실제로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분들의 삶이 그 이후로 뭔가 용초도에 갇혀서 살 수밖에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는데 10년이 걸렸습니다. 한국전쟁이 단순하게 옛날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전쟁이 아니라 전쟁 이후 70년 동안 한반도의 현재를 만들어낸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고 지금 우리가 이 전쟁이 어떤 의미를 줬는지, 우리한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좀 제대로 알려줘야 되는데 그런 부분들을 저도 그전까지 생각하지 못했는데 촬영을 하면서 포로 송환 문제라든지 이런 부분들을 좀 제대로 좀 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가 한국전쟁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Q. 조금 전에 말씀하셨던 용초도에서 돌아온 국군 포로들을 가두어서 적절 처분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주 충격을 받았는데 돌아온 포로분들 중에 지금 살아계시는 분들이 있을 텐데 용초도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가 가능하지 않은가요?

A. 돌아오신 포로들이 자기가 포로 출신이라는 걸 일단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전쟁에서 돌아온 포로들은 부끄러운 존재들이었습니다. 집에서도 가족들에게 포로분들이 무슨 꼴을 당하고 왔을지, 세뇌를 당하고 왔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족들 사이에도 의심을 했었기 때문에 그분들이 나서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때 당싱 포로로 잡혔던 박진홍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자신이 포로로 있었을 때의 경험을 수기로 남겨놓으셨습니다. 포로 수용소에서 있었던 경험뿐만이 아니라 포로로 잡혔을 때부터 나중에 돌아왔을 때까지의 이야기를 적은 돌아온 패자라는 제목으로 수기를 남겨놓으셨거든요. 그분의 기록에 따르면 서로 심리전을 합니다. 그러니까 포로 a가 있고 b가 있으면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게 하는 질문들을 유도하고 거기에 넘어가서 다른 사람이 넘어갔다 라고 이야기를 한 포로들이 나중에 꼭 화장실에서 목매달고 죽더라라는 그런 기록을 거기다 써놓으셨습니다. 용초도에서 지냈다가 포로수용소를 짓는다면서 주민들을 쫓아내자 주민들이 용초도 바로 앞 환산도로 넘어갔습니다. 그때 당시의 주민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쟁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밤에 한참 총소리가 그렇게 나고 나중에 전쟁이 끝나고 용초도로 돌아왔을 때 뼈들이 많이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특무대의 기록에 보면 돌아온 포로 중에 120명 정도는 죽었다고 표현한 기록도 있습니다. 사실 그분들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진상조사가 쉽지 않은 부분인 것 같습니다.

Q. 조금 다른 관점으로 독일이 전범국가로서 두 개로 나누어졌고 일본도 전범 국가로서 연합국에 의해서 4개로 나누려고 했었는데 그걸 미리 알고 있던 일본이 나누어지기 직전에 미국을 만나서 이야기했던 것이 조선을 나누는 것이었고 실제로 나누어졌고 그래서 지금 현재 판문점이 그 상징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A. 맞습니다. 일본이 전쟁에 패배하게 되면서 일본이 분할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당시 일본에 의해서 한반도가 분단이 되고 38선을 중심으로 해서 소련과 미국이 지배를 하게 되면서 양측의 사회의 체제에 맞는 국가가 만들어지게 된 거죠. 그리고 미국이 일본을 그냥 단순히 놔둔 게 아니라 전쟁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어떤 본부의 역할 또는 전방기지로 미국의 강요에 의해서 만들게 되고 일본은 따르게 됐고 한반도는 총알받이 같은 역할을 하는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왜냐하면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판문점이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앞에 말한 그런 배경이 있어요. 근데 이 부분을 얼마나 깊게 설명을 해야 되나 그게 굉장히 고민이었어요. 그래서 굉장히 좀 간소화시키다 보니까 앞부분에 사전 설명으로 역사적인 사실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판문점은 사실 한국 전쟁의 산물이면 한반도는 왜 분단이 됐냐라고 봤을 때 일본의 패망할 때 한반도에 던져준 원인이 가장 큽니다.

Q. 저희 관객분들 다양한 세대에 앉아서 오늘 영화를 보셨는데요. 제일 뒷줄에 있는 어린이 관객으로 있었는데 지금 어려운 이야기 이 영화 어떻게 봤는지 너무 궁금한데 역시 짧게라도 이야기 해줄 수 있나요?

A. 재미있었어요.

<어린이 관객이 말한 뒤 감독님의 말>

판문점이 원래 있었던 마을이라는 것만 알아도 굉장히 좋을 것 같습니다. 이게 잘못 알려진 사실인데 제가 좀 정정을 드리면 역사책이나 판문점 관련해서 누가 쓴 책들을 보면 판문점이 한국전쟁 당시에 연합군이 중국을 배려해서 한자로 판문점이라고 만들어 사용하자라는 식으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설화가 있습니다. 선조가 임진왜란이 일어나 도망갈 때 판문점이 워낙 물이 넘쳤는데 마을의 대문을 뜯어가지고 다리를 만들어서 판문이라는 마을이 되었다라는 유례가 있거든요. 물론 그것까지는 맞지만 거기는 판문점이라는 협상은 마을이 원래 있었고 그 마을이 연합군과 북한군, 중국군이 만나서 연락하는 장소의 회담을 하던 공간이었습니다. 근데 개성에서 협상을 하는 것이 이제 연합군 측에서 너무 불안했던 거죠. 왜냐하면 총 들고 있는 북한군들이 계속 있으니까요. 영화에도 나오지만 연합군이 너무 위험하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를 이런 식으로 계속 압박하면 개성으로부터 8km 떨어진 동쪽의 끝에 위치한 판문점이라는 곳에서 협상을 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미군이 판문점이라는 협상장이 탄생하기 전부터 판문점이라는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라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판문점은 새롭게 이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일제시대 때도 판문점이라는 마을이 존재했었고 이미 존재했던 마을을 협상장으로 사용한 것이지 판문점이라는 이름이 한국전쟁 때 만들었다 라는 이야기들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더레이터: 오늘 많은 지식과 정보를 이제 가지고 가는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혹시 질문이라든지 강사 또 손들고 이야기해 주실 분 계실까요?

감독님: 영화에 박해일 씨가 나왔습니다.

모더레이터: 제가 질문을 하지 않아도 이미 가시는 자리마다 들으시는 질문이었을 것 같아요.

감독님: 박해일씨가 출연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어렸을 때 이런 판문점이라는 걸 뉴스나 학교를 통해서 배워서 판문점이 어떤 공간인지 여기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정도는 알고 살았는데 요즘 애들은 그런 걸 전혀 모르더라. 그래서 그런 부분들 때문에라도 자기가 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박해일 씨와 정전 70주년에 판문점 다큐멘터리 녹음을 했거든요. 정전 70주년에 지금 판문점의 상황을 잘 알게 됐고 그리고 너무 선전, 선동하듯이 강요하고 주입하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정보들을 계속 알려줘서 뭔가 생각할 거리들이 많았다 이런 얘기도 좀 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소감1>

너무 잘 봤고요. 솔직히 제가 30대인데 이런 거에 관심을 사실 안 둔 것도 사실인데 좋은 기회를 얻게 돼서 친구들한테 이런 사실을 좀 전달해야 되고 저는 응원의 목소리를 내고 싶고 비판 내용은 사실 질문할 생각을 안 해가지고 이렇게 깨어 있는 지식인들이 많구나 이런 분들이 대한민국에 많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너무 영화 잘 봤고요. 감사합니다.

Q.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좀 인상 깊은 느낌은 많은 자료와 증언들이 이제 포함되어 있다 보니까 어떤 면에서 굉장히 교육적이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독님은 이제 영화 감독님이시기도 하지만은 또 PD로서 언론인이시기도 한데 언론에서 할 수 있는 또는 학교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이런 일들이 또 있을까요?

A. 저는 제일 기억에 남는 게 사실 영화가 개봉하고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영화를 보고 판문점이 교과서에서 이름만 들었었는데 이게 어떤 일을 하는 공간인지를 정확히 알게 돼서 너무 좋았다라고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그 말이 굉장히 저는 깊게 남아 있습니다. 한국전쟁 일어난 다음의 현재의 한반도가 왜 이런 모습을 갖게 됐는지, 조선시대 때 우리는 분명히 하나의 어떤 조선의 지도를 보면서 역사책을 배우는데 왜 지금 우리는 남한과 북한으로 갈라진 채로 있을 수밖에 없는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좀 알려주는 교육의 어떤 일환으로 판문점이 좀 활용이 됐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Q. 마지막 인사 말씀과 그리고 혹시 다음 작업으로 또 어떤 작업을 준비하고 계시는지?

A. 부산영화제 포스터를 보면서 비어있는 공간이 비무장지대 같은 느낌이 들고 서로 손을 내밀고 떨어져 있지만 이야기하려고 하는 시도가 보여서 평화영화제에 초청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제가 지금 현재 뉴스타파에서 일하고 있는 뉴스타파가 작년에 압수수색을 당하고 올해 지금 기소를 당해서 재판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계속 취재를 하고 있고 계속 기록해 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뉴스타파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회사 대표님와 함께 지금 다큐멘터리 작업을 진행을 하고 있고 저 개인적으로는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뉴스타파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후에 뉴스타파는 변화하게 되는 모습들을 계속 기록해서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